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동규(무술인) (문단 편집) == 초기 생애 == 전남 출생으로,형제들이 모두 [[서울대]]에 진학한 수재로 유명했으며, 임동규 본인도 지역 명문인 [[광주제일고등학교|西中, 一高]]를[* 희극인 [[심현섭]]의 선친 [[심상우]] 전 민정당 총재 비서실장이 임 씨의 1년 선배.] 거쳐 서울대 상과대학에 진학하였다. 학창시절 [[유도]]부에 몸담아 선배들을 이기고 학내 제일의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대학 진학 후에는 경제학도로써, 학생운동가로써 무술과 거리를 둔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통혁당 재건 기도 사건"과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79년 ~ 88년까지 9년 9개월 동안 복역을 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다시 무술과 인연을 맺게 된다. 사실 그 무렵의 임동규는 민주화운동[* 정확히는 노동 문제와 통일 문제에 천착.] 대신 고향의 부모님 일을 잠시 도우며, 시국사범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작은 아버지가[* [[조총련]]계 활동도 겸했다고 한다.], 생활고를 겪는 임동규의 부모님께 거액의 돈을 보낸 것이 화근이 되었다. 임동규네 가족들은 이 돈을 천장 등지에 숨겨놓고 조금씩 가져다 쓰며 나름 신중을 기울였으나, 다들 알고 지내는 지역사회에서 전보다 지출 규모가 늘어난 걸 경찰들이 주목, 불시에 임 씨 집을 기습해, 임 씨의 부친을 간첩으로 검거해 [[안기부]]로 보내고, 돈은 '''"수상한 공작금"''' 딱지를 붙여 모조리 털어가버린 것이다. 격분한 임동규 형제들이 서울역 앞에서 시위를 하는 한편 경찰을 찾아가 극력 항의를 했지만, 경찰측은 미동도 하지 않았으며[* 그나마 학벌과 실력, 인맥을 모두 갖춘 임동규 형제들을 크게 건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경찰측의 설득을 가장한 협박을 받은 임동규의 형들은 결국 한 발 물러선다. 그러나, 임동규만큼은 끝까지 파고들어 기어이 이 돈을 되찾으려 한 게 문제가 되었다. 경찰 측에서는 때마침 벌어진 [[민투위 강도 사건|"시국강도"사건]]에 임동규를 연루시켜 재판까지 받게 만들었고, 결국 임 씨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