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잡가 (문단 편집) == 상세 == 춘추전국시대 기간동안 수없이 나타난 제자백가들로 인하여 수많은 사상이 나타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제자백가들의 사상이 겹쳐지거나 통합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 잡가는 이 사상들을 절충하거나, 통합, 집대성하는 학파라고 할 수 있다.--절대로 기타 잡것을 주장하는 학파가 아니다.-- 당장 [[유가]]만 하더라도 한나라 시기만 되어도 [[농가]], [[도가]], [[음양가]][* 동양 역사에서 나라의 흥망성쇠를 설명할때, 나라가 오행 중 하나의 성질을 띄고 있어서 그 기운이 쇠하였다라고 하는 사상의 근원이 음양가에서 넘어왔다.] 등의 사상이 흡수통합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묵가]]도 시대가 흘러가면서 [[병가]]와 겹치는 부분이 생기는 걸 보면, 제자백가들이 자신의 사상의 완성도를 높이고 설득력을 갖추는데 있어서 다른 사상의 이론을 빌려오거나, 각 사상별 구분이 엷어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에 맞춰서 잡가는 제자백가들의 사상을 집대성하고, 그 장단점을 파악하여 장점을 취하려고 하였다. 다만 다른 사상을 집대성한다는 그 특성상 등장은 제자백가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늦게 나타났는데, 잡가의 대표적 저서인 [[여씨춘추]]가 춘추전국시대의 가장 끝무렵에 등장한 것만 봐도 이러한 모습을 알 수 있다.[* 또한 각 사상에 대하여 두루 통달해야하는 잡가의 특성상 이런 저서 만들기때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릴 수 밖에 없기도 하다. 하물며 종이도 없는 시대였으니...] 그러다보니 잡가가 역사에 등장했을때는 그 사상을 알릴 기회가 다른 사상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었고, 그나마 여불위가 시도하려고 했지만, [[법가]] 사상이 뿌리내린 [[진나라]] 정치체계를 바꿀 수는 없었다. 다만 다른 사상을 통합, 집대성한다는 사상 자체는 [[유가]] 등의 사상이 잘 이어받아서 다른 제자백가의 사상의 이론을 흡수하는데 잘 써먹었다.[* 애초에 한나라때의 유학인 훈고학 자체가 [[분서갱유]]등으로 사라진 저서들을 복구하는 데 중점을 맞추다보니 이럴수 밖에 없기도 했다.] 잡가(雜家)는 자신만의 창의성을 띤 사상이 있는 것이 아니며, 제자백가의 주장과 이론을 절충[雜]하고 해설하여 집대성[雜]하기에 잡가라 부른다. 다른 사상과 주장의 장점을 모으되 그 단점을 피했다. 잡가를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저술은 《여씨춘추(呂氏春秋)》와 《회남자(淮南子)》이다. 잡가의 학자들은 잡가라고 자칭하지 않았다. 잡가라는 명칭은 반고의 《한서》〈예문지〉에서 처음 나온다. 반고는 여러 가지 사상을 종합[雜]하고 절충[雜]한 것이 잡가의 특징이자 장점이지만, 이것이 잡가의 단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