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학영 (문단 편집) === [[성남 일화 천마]] === [[경기대학교]]를 졸업했으나 K리그 팀들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지 못했고, 결국 [[성남 일화 천마]]에서 연습생 신분으로 훈련에 참가해야 했다. 이 때 [[안익수]] 당시 성남 2군 코치로부터 성실성을 인정받아 2004 시즌 도중에 정식 계약을 맺게 되었고, 중앙 미드필더에서 현재의 포지션인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것도 이 때이다. 처음에는 미숙한 경기력으로 왜 쓰는지 모르겠다는 불만과 함께 많은 팬들의 질타를 받았지만, 전북 원정 경기의 대승을 기점으로 본인이 가진 경기력을 온전히 보여주면서 [[차경복]] 성남 감독의 눈에도 띄어 데뷔시즌에 16경기나 출전하고, 이듬해에는 아예 주전자리를 꿰차기에 이른다. 어디선가 갑자기 [[갑툭튀]]한 무명 선수가 주전으로 대활약하는 것을 보고 성남 팬들은 복에 겨워하며 '''장[[하악하악|하악]]영'''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이 때의 활약으로 [[딕 아드보카트]] 감독에 의해 A대표팀에도 소집되기까지 한다. [[김학범]] 감독의 부임 이후에는 장학영-김영철-[[조병국]]-[[박진섭]]으로 이어지는 철의 포백의 한 축을 담당하며 성남 일화의 마지막 K리그 우승, AFC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에 일익을 담당한다. [[김학범]] 감독의 사임 이후 [[김학범]] 감독 아래에서 주축을 담당하던 선수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팀을 떠날 때도 조병국, 정성룡 등과 함께 그대로 잔류해 [[신태용]] 감독의 아챔 우승에도 기여한다. 전성기에 왼쪽 풀백자원이 풍부해서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던 게 아쉬울 따름이다.[* 핌 베어벡 감독 시절 K리그 챔피언 결정전 직전에 대표팀 소집을 받았는데 부상을 이유로 차출을 거부해 놓고 며칠 후에 챔피언결정전에 출전한 일 때문에 안 좋게 찍혔다는 설이 있는데 그냥 설일 뿐이고 그걸로는 [[핌 베어벡]] 이후로도 국대와 인연이 없었던건 설명이 안된다. 이 시절에는 부동의 주전으로 이영표가 있었고 김동진, 김치우 등 국제무대 경험과 나름의 장점을 가진 선수들이 있었기에 경쟁에서 밀렸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리고 2010년 시즌 중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면서 팀을 떠났다. 공익으로 병역을 이행하는 중에는 [[K3리그]]의 [[서울 유나이티드]]에서 뛰면서 경기감각을 유지했다.[* [[서울 유나이티드]]에 있을 때 장학영을 제대로 활용해 보려고 여러 포지션에 걸친 실험이 있었다. 윙포워드 부터 중미, 수미, 심지어 센터백도 뛰었다. 그냥 골키퍼 말고는 다 해 봤다고 봐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K3리그]]에서 '이거다!' 싶은 활용법을 찾지 못했다. 다만 이 경험이 이후 부산에서 공격적으로 올라가는 플레이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긴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