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학영 (문단 편집) === [[부산 아이파크]] ===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팀은 성남이 아닌 [[부산 아이파크]]였다. 장학영의 소집 해제를 앞두고 성남이 부산에서 [[한상운(축구선수)|한상운]]을 영입하면서 그 대가로 장학영의 소유권을 부산에 내주었기 때문. 장학영은 자신의 등번호였던 33번을 쓰던 홍철에게 2012년에는 자신의 번호를 비워둘 것을 미리 이야기 했을만큼 팀에 대한 복귀를 당연시했고, 떠날 때도 팬들을 따로 불러서 송별회를 치룰 만큼 팀과 팬에 대한 충성심이 컸던 장학영이었다. 이때만 해도 장학영이 도박중독자인 줄 몰랐던 성남팬들은 레전드를 이렇게 내칠 수 없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하지만 당시 성남일화 프런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장학영을 부산에 넘겨준다. 당시 부산 감독은 다름아닌 장학영을 발굴해 낸 [[안익수]].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명언 그대로 소집 해제 후 [[부산 아이파크]]에 이적하자마자 주전으로 활약한다. 당시 [[신태용]] 감독의 계획은 [[안정환]]을 영입하여 성남의 구심점으로 내세우는 것이었으나 영입하지 못했다. 결국 [[홍정호]]+[[안정환]] 영입 실패(센터백+팀의 구심점)를 만회하려 했는지 [[황재원(1981)|황재원]]을 영입하였지만 그는 사이버 선수가 되었다. 계획이 다 틀어지고 멘탈레기만 남은 결과 문자 그대로 망하였다. [[한상운]]은 성남에서 부진하여 J리그로 임대됐고 [[홍철]]은 당시 발바닥 수술을 받고 폼이 나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남궁웅]][* [[남궁도]]의 동생]이 왼쪽 풀백을 보며 선전했지만, 팀을 구원하진 못했다. 결국 팀이 존폐 위기를 맞은 연말에 신 감독은 계약기간을 2년 남겨놓고 사퇴했다. 2013 시즌 10살 아래 신인 [[박준강]]과 부산의 좌우 측면 수비를 나눠맡아 책임졌다. 2014 시즌에도 주전으로 33경기에 출장해 3개의 도움을 기록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