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헌충 (문단 편집) === 정리 === 장헌충 전설은 명말청초의 사천사회와 장헌충에 대해 문헌자료가 제공해주지 못하는 새로운 내용을 풍부하게 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문학 자료인 장헌충 전설을 역사학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조심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사실성의 문제이다. 전설들은 문헌자료에 기록되고 분명하게 역사적 사실로 입증된 내용들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도 있지만 민초들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되 사실을 적당히 가공하여 이야기의 재미와 극적 요소를 강화 시킨 것도 있다. 둘째는 세계관의 문제이다. 장헌충 전설 속에서는 부자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전설 속에 등장하는 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한 자들을 압박하고 착취하는데 혈안이 된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다가 장헌충에게 죽임을 당하고 부정하게 모은 재물을 뺏기는데 민초들은 빼앗긴 재물을 장헌충을 통해 돌려받는다. 현실에서 존재하는 '착한' 부자들의 존재는 외면한다. 지배층인 관료나 신사, 지주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일방적인 시각은 전설을 재미있고 선명하게 전개하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복잡다단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데는 장애가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장헌충 전설 자체는 명말 청초의 사천사회와 장헌충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장헌충 전설은 지역적으로 사천전체가 아니라 사천의 일부 지방 특히 서북부인 재동현(梓潼縣), 서충현(西充縣)에 집중적으로 유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태묘 건설과 보수과정에서 장헌충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은 재동현에서는 그의 행적을 지지하면서, 장헌충 사망지인 서충현에서는 항청 투쟁에서 희생된 그를 기리면서 많은 전설을 만들고 유포시켰다. 반면 대서정권의 도읍지였던 성도 주변의 사천 서부 일대에 유포된 전설은 극소수이다. 이 지역에서는 오히려 도살자 장헌충을 글로 벌하는 문헌기록을 주로 남겼다. 둘째, 장헌충 전설은 장헌충 세력 대 반 장헌충 세력의 대결 구도라는 관점으로 명말청초 동란기의 사천사회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전설은 반 장헌충 세력의 중추인 명의 관료와 군대는 부패했고, 지주와 신사는 민초들의 삶을 고달프게 만든 악한 무리라고 낙인을 찍고 있다. 이는 신사층이 기록한 문헌자료에서 전하는 바, 장헌충 세력은 악이고 반 장헌충 세력은 선이라는 가치판단을 민초들이 뒤집은 것이다. 셋째, 장헌충에 대한 전설의 개별적인 이미지들은 논리적으로 서로 연결되면서 하늘을 대신해 정의를 내린다는 이른바 체천행도(替天行道)의 구현자이다. 이 과정에서 희생되는 자들은 평소 민초를 괴롭히던 악인들이므로 그들을 죽이는 것은 정의로운 행위이다. 신사나 관료들이 장헌충을 비난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인 대규모 인명살해를 전설에서는 권선징악과 부자를 치고 빈자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위로 정당화한 것이다. 이리하여 장헌충은 지배층이 기록한 문헌자료에서 낙인찍힌 도살자의 이미지를 벗고 오히려 체천행도의 구현자로 부활하였다. 이런 관점은 도둑 무리가 군웅으로 활약하면서 체천행도 한다는 [[수호전]]의 계보를 이은 것이다. 하지만 장헌충이 수행한 천명은 힘을 앞세우는 패도적 속성이 강했고 그로 인해 대서정권나 장헌충은 진시황이나 항우 정권처럼 단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장헌충에 대한 기록들은 사천인들 각각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싶거나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토대로 재구성한 반쪽 이미지들에 불과하다. 역사연구자의 입장에선 당연히 문헌기록의 사실성을 더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문학적 허구인 전설도 세세한 내용면에서는 사실성이 떨어지지만 그 줄거리는 시대상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결국 사천인들에게 있어 장헌충에게는 '도살자'와 '체천행도의 구현자'라는 이중의 성격이 병존했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