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헌충 (문단 편집) === 은혜를 갚은 장헌충 전설 === 이렇게 비범한 출생 전설이 있지만, 성장 전설에서는 상대적으로 평범하였다. 공부보다는 글을 배우면서 스승의 말은 귀담이 듣지 않았다거나, 무술을 익히고 싸움하는걸 좋아했다거나, 지주의 아이를 때려서 서당에서 쫓겨났다거나, 아버지와 사천에서 대추장사를 했거나, 장사치를 따라서 사천을 떠돌았다는 전설이 있다. 사천에서 장사를 할 때는 모욕을 받아서, 훗날 복수하겠다고 결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천성의 서부 성도, 동부의 충칭 지역에서는 장헌충과 관련이 있는 절기·지명 유례가 전설도 있다. 단오절에 관련된 내용으로는, 장헌충이 사천성에서 죽은 오빠와 올케가 남긴 조카를 업어주고, 자기가 낳은 아이는 걷게 하면서 피난을 가는 착한 여인을 만나자, 자신의 군대가 악인들을 죽일 때, 쑥(혹은 창포)를 집 밖에 걸어서 죽음을 피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착한 여자는 이웃 사람들에게도 사실을 알려줘서, 이웃들도 모두 참화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날이 마침 단오절이라, 이것이 [[단오절]]에 대문이나 벽에다가 쑥을 내걸게 된 유래라고 전설은 언급한다. 단오절에 쑥을 문 밖에 내거는 풍습은 질병을 막는 쑥의 기운으로 액막이를 하는 주술적 행위로서, 이미 [[위진남북조시대]]에도 언급될 정도로 연원이 오래됐고 중국 전역에 퍼져 있기 때문에, 이미 있었던 풍속에다가 장헌충 설화를 결합시킨 것이다. 또 [[충칭]] 지역에는 쑥이나 창포를 내거는 것 이외에도 장헌충이 버드나무 가지를 꽂으면 죽이지 않는다고 알려줘서, 주민들이 살아날 수 있었고, 그래서 마을이 버드나무 거리(楊柳街)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역시도 쑥으로 하는 액막이와 비슷한 풍속이 장헌충 설화와 결합된 것이다. 이런 기록들에선 장헌충이 닥치는대로 도살했다는 문헌 기록과는 달리, 선악(善惡)을 골라서 죽인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악인들조차 주술적 행위로 피해갈 수 있었다는 이유로, 기존 문헌과는 상반된 묘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구비 전설에서조차도 거의 '죽음의 천사' 수준으로 장헌충이 도살을 하고 다녔다는 전설들도 있기에 장헌충 전설에 대해선 여러가지로 애매한 구석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장헌충이 어린 시절에 신세를 졌다가 나중에 은혜를 갚은 전설도 있다. 어린 장헌충에게 젖을 준 유모, 어린 장헌충이 말똥을 치우고 있을 때 흰 두건을 빌려준 자, 농민군 포로에게 떡을 준 노파 등등에게 은혜를 갚았다는 내용이다. 은혜갚기 전설의 사례는, 어린시절 장헌충이 섬서에서 사천 수녕현으로 장사를 하러 왔는데, 말이 부자집 문 앞에서 똥을 누자 그 집 주인이 장헌충에게 똥을 치우라고 명령했다. 장헌충은 혹한에 언 손으로 말똥을 치우는데, 어느 청년이 흰 두건을 벗어 사용하라고 주었다. 장헌충은 훗날에 봉기하여 군대를 이끌고 사천의 수녕현에 도달하자, 흰 두건을 쓰고 있는 사람은 죽이지 못하게 했는데, 그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흰 두건을 써서 살아났다는 것이다. 흰 두건은 [[상복]]으로, 은인이 흰 두건을 아직도 쓰고 있을 가능성은 없는데, 그럼에도 은인을 죽이고자 하지 않는 장헌충의 투박하지만 우직한 마음씨를 묘사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도 장헌충이 '흰 두건'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지지세력 외엔 학살을 하긴 했다는 식의 얘기라 '장헌충'이라는 이름에 실린 피비린내를 완전히 가려주지는 못하는 일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