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희철 (문단 편집) ===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동양 오리온스]] (1997-2002) === [[파일:전희철_오리온스.jpg]] 그리고 출범한 KBL 원년시즌, 대구 동양 오리온스로 이름을 바꾼 팀의 주전 [[파워 포워드]]로 나선 전희철은 교체 없이 풀타임으로 경기를 소화하다시피 하며[* 평균 출장시간 39분 40초] 시즌 평균 23.1점[* 리그 득점순위 9위. 득점 10위권 안에 든 유일한 한국인 선수였다.]-6.9 리바운드를 기록, 외인 가드 토니 매디슨(평균 29.1점), [[김병철(농구)|김병철]]과 함께 팀을 리그 4위에 올려놓는다 .비록 팀은 플레이오프 4강에서 만난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부산 기아]]에 전력차를 실감하며 물러났지만[* 대학시절부터 이어진 전희철의 기아 징크스였다.] 전희철은 프로 원년시즌 베스트 5에 오르며 외인들이 점령한 KBL에서 토종의 희망 같은 최고의 스타 반열로 올라선다. 두번째 시즌(1997-98), 새 외국인 선수 [[키넌 조던]], 키이스 그레이를 파트너로 맞은 전희철은 평균 18.2점-5.0 리바운드로 기록이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팀내 2옵션 역할을 유지하며, 대구 동양을 리그 5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다. 6강 플옵에서 전희철은 평균 19.2점을 올리는 활약으로 원주나래를 격파, 2년 연속 4강 진출에 성공하지만, 이후 4강전에서 전희철이 무릎부상으로 골골대면서 리그 1위팀 대전 현대를 상대로 아무것도 하지못한 채 3패로 광탈하고 만다. 시즌 후 전희철은 공익근무로 병역을 치렀다.[* 공익근무로 간 덕분에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한 [[김병철(농구)|김병철]], 김광운 보다 한시즌 빨리 복귀할 수 있었다. 다만 소재지이탈이 안되는 특성상, 복무기간동안 국가대표 차출이 안되어 1998 방콕 아시안게임과 1999 아시아선수권대회 대표팀에는 참가할 수 없었다.] 소집해제 후 맞이한 1999-00시즌, 세계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도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의 패배를 쌓았던 오리온스에 복귀한 전희철은, 개막 2번째 게임이었던 대전 현대와의 원정경기에서, 대전 현대의 센터 로렌조 홀(203cm)의 팔꿈치에 맞아 이마가 찢어진 와중에도 그대로 붕대를 감고 뛰며 덩크슛을 터뜨리는 인상적인 활약으로 KBL 컴백을 알린다. 하지만 이 시즌 전희철은 192cm의 떡대 루이스 로프튼에게 골밑을 맡기고 외곽에 나와 3점을 쏴대는 일이 잦아지면서[* 커리어 중 가장 많은 3점슛을 시도(경기당 6.58개 시도. 성공률 37.5%)한 시즌이다.] 토종 [[파워 포워드]]로서의 면모가 사라졌고, 팀은 시즌내내 포인트 가드 부재로 골머리를 앓다 결국 1게임 차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다. 00-01 시즌. [[김병철(농구)|김병철]], 김광운, 그리고 중고신인 [[박재일]]까지 상무에서 제대하면서 전희철은 비로소 오리온스를 플레이오프로 이끌 것만 같아 보였다. 하지만 외려 팀은 이전 시즌보다 더욱 총체적 난국에 빠져들고 말았으며, 전희철은 평균 15점 5리바운드라는 준수한 활약을 보이긴 했지만 외국인 선수들로만 채워진 다른 팀들의 골밑을 공격하는데 버거워하는 모습도 보였고 또 한번 부상을 당하며 시즌 중에 전력에서 이탈하기도 했다. 결국 팀을 나락에서 구해내지는 못 했다. 01-02시즌. [[김승현(농구)|김승현]]과 [[마르커스 힉스]]-[[라이언 페리맨]]이 합류한 오리온스는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며 지난날의 오욕을 털어냈고, 전희철은 [[스몰 포워드]]와 파워 포워드를 오가며 14점 4리바운드를 기록, 단짝 [[김병철(농구)|김병철]]과 함께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오리온스 팀]]의 사상 첫 번째 우승을 이뤄낸 공신 중 한 명이 된다. 상대팀 [[스몰 포워드]]와 매치업 시 신장차를 이용해 1:1 포스트업으로 올리는 골밑 득점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대구 동양]]의 대표적인 세트오펜스 옵션이었고, "Not 스몰 포워드" 전희철을 막기 위해 챔프전 상대팀 서울 SK는 한양대 센터 출신인 김종학(197cm)을 3번 자리에 내세우기도 했다. [[파일:오리온스 창단 첫 우승.jpg]] 7차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전희철은 프로 커리어 첫 우승을 달성하지만, 오히려 우승을 해서 팀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01-02시즌 동양은 전체 샐러리캡 10억 5천만원 중 99.14%가 소진될 정도로 고액 연봉이 나가는 팀이었는데, 우승까지 하게 되면서 모든 선수의 연봉을 올려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김승현의 연봉은 8천만원에서 1억 6천만원, 김병철의 연봉은 1억5천에서 1억9천으로 인상되었다.], 샐러리캡을 확보하기 위해선 누군가는 팀을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팀내 최고액 연봉이었던 전희철[* 01-02시즌 동양에서 1억9천5백만원, 02-03시즌 KCC에서 2억 2천만원]이 결국 2년차 포워드 [[이현준(농구)|이현준]](193cm)과 현금 6억원에 [[전주 KCC 이지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동양의 02-03시즌 샐러리캡[* 11억 5천만원]이 정리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