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나라 (문단 편집) ===== 전성기 ===== 지리적으로 중원의 이점을 살려 교통과 상업이 발달하여 BC 8세기경 [[정환공|환공]]의 아들 [[정무공|무공]](武公)과 손자 [[정장공|장공]](莊公) 때 최전성기를 이루었는데 그들은 동주의 경사(卿士)를 지냈다. 장공의 어머니 무강(武姜)이 난산을 겪으며 낳았기 때문에 장공의 이름을 역산(逆産)을 의미하는 오생(寤生)으로 지었다. 무강은 장공을 매우 싫어했으며 대신 반대 급부로 아우 단을 사랑했다. 무강은 단에게 요충지였던 제읍을 줄 것을 청했다가 장공이 이를 거부하자 큰 고을인 경성을 주기를 요청하니 이를 승낙했다. 이에 [[채중(춘추시대)|채중]](祭仲)은 너무 큰 읍을 주었다고 간언하기도 했다. 훗날 태숙 단이 어머니 무강과 호응하여 본국을 치려 하자 장공은 군사를 일으켜 단의 봉읍 경성을 치니 경성 사람들이 단을 배반했다. 단은 언으로 도망쳤고, 장공이 이를 추격하자 다시 공나라로 도망갔다. 장공은 무강을 성영으로 옮기고 “황천(黃泉, 저승)에 가기 전까지는 절대 어머니를 만나지 않겠습니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이를 후회했고 이듬해 영고숙이 황천(지하수)에서 만나면 된다고 진언하자 이를 따라 굴을 파서 어머니를 만나고 화해했다. 장공은 경사라는 지위를 ~~남용~~ 활용해 각 나라를 침공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동주 천자의 권위를 떨어뜨렸다. 장공의 만행을 견디지 못한 [[환왕]](桓王)[* 평왕(平王)의 손자]이 장공을 토벌하러 오자 대부 축담(祝聃)이 화살을 쏴서 환왕의 어깨를 맞춰 버렸다('''수갈 전투'''). 그나마 처음에 축담이 왕을 사로잡자고 하는 걸 거부한 것이었다. 거기다가 장공이 잘못한 것을 천자가 토벌하러 온 건데 천자에게 오히려 맞섰던 것이기 때문에 화살을 맞은 환왕에게 사과와 재물을 보내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이에 대해 환왕은 별 말을 하지 못했고 왕실의 권위는 추락했다. 그리고 550여 년에 걸친 [[춘추전국시대]]의 대[[난세]]가 개막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