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민철/선수시절 (문단 편집) ====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기용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 ==== 무엇보다도 요미우리는 처음부터 정민철을 '''땜질용 선발'''로 써먹을 속셈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당시 요미우리가 정민철을 영입할 이유 자체가 의문투성였는데 정민철의 영입 시점에서 당시 요미우리의 외국인 투수 슬롯은 과포화상태였고, 그중 한 자리는 그 유명한 [[발비노 갈베스]]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남은 자리는 단 하나 뿐이었다. 문제는 이 한 자리를 놓고 세 명의 투수가 경쟁을 해야 했던 것. 그나마 그 자리도 애초에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럴 메이'''라는 선수였는데, 98년과 99년에 [[한신 타이거즈]]에서 어느 정도 실적을 올린 선수로, 99년 말에 계약금+연봉 1억 5천만엔의 거액으로 정민철보다 앞서 계약한 상태였던 것이다.[[http://ja.wikipedia.org/wiki/%E3%83%80%E3%83%AC%E3%83%AB%E3%83%BB%E3%83%A1%E3%82%A4#.E9.96.A2.E9.80.A3.E9.A0.85.E7.9B.AE|위키피디아 일본의 메이 항목]] 심지어 남은 경쟁자는 [[조성민]]으로 한국인이었다. 그러니까 요미우리는 이미 존재하지도 않은 선발 자리를 놓고 한국인 두 명을 경쟁하게끔 한 것인데, 실제로 정민철에게 주어진 기회 자체가 달랑 4경기에 불과하며, 뒤의 두 경기는 누가 봐도 말아먹긴 했지만 앞선 두 경기는 누가 봐도 완벽한 호투였다. 2군 성적도 매우 좋았다. 그럼에도 이상할 정도로 기회를 안 준 요미우리의 행보를 볼 때 처음부터 정민철의 영입은 보험용 6선발 내지 로또였고, 정민철이 아무리 호투했어도 기존 투수진이 건재하다면 활용할 생각이 없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가지 웃긴 건 사실 외국인 투수 중 한명인 갈베스는 6경기 만에 2군으로 쫓겨나 다시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는 것.[* 명목상 이유는 6경기 등판 6패에 무릎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어율은 3.26으로 준수했었는데 갈베스는 이전부터 고약한 성질머리로 유명했고, 매년 태업 의혹도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2군행에 불만을 품고 구단과 갈등을 빚어 다시는 1군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정민철이 1군에 올라 올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긴 했는데, 이마저도 몇 경기 기회도 안 주고 5선발체제로 전환해 아예 외국인 투수 한 자리 없이 시즌을 보내기로 결정해버린다. 그러니까 선발 자리가 있건 없건 정민철을 쓸 생각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때 당시 요미우리가 정민철과 한국 언론에게 댄 핑계가 그 유명한 '''“로테이션 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선발 로테이션이 꼬였다고 용병 투수를 한 달씩 2군에 보내는 팀이 과연 어딨을까? 덧붙여서 일본 역시 1군 말소 기간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10일이다. 로테이션이 꼬였다고 2군 보내면 기본적으로 10일은 썩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민철 본인을 비롯, 한국에서 이 얘기를 납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론적으로, 요미우리는 자기들이 쓰지도 않을 남의 나라의 에이스 투수를 다른 팀보다 앞서는 현금동원력을 이용해 영입한 뒤, 성적과 상관없이 2군에서 썩게 했다는 것. 게다가 처음부터 정민철과 함께 [[정민태]]도 영입하려고 했으며 실제로 2000 시즌 종료 후에 현대에서 정민태를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2000년 정민태는 말 그대로 미쳤다. 18승 6패를 거두면서 공동 다승왕, 플레이오프 MVP를 거두었다. 다만, 정민태는 1996년부터 2000년까지 83승을 거두면서 리그 최강의 선발투수로 군림했으며, 매 해마다 200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심지어 1997~1999년은 이닝 소화율 1위, 2000년은 이닝 소화율 2위를 했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외국인 투수 자리는 두 자리다. 한 자리는 이미 채워져 있었고 남은 한 자리를 한국인 투수 [[조성민|세]] [[정민태|명]]이 경쟁해야 한다. 이게 어쩌다보니 이렇게 된 것도 아니고, 요미우리가 처음부터 이런 계획을 세웠다는 거다.''' 현지 팬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구글에 鄭ミン哲[* 일본은 珉(민)자를 쓰지 않는다.]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한 블로그에 따르면, >はっきり言って、投球内容はまったく記憶にないが、この頃の巨人は無駄に韓国人投手があふれていたので、在籍してた事だけはよく覚えている。 >資料によると、2年間のレンタル移籍だったとのこと。本人が希望したらしいが、巨人というチームが悪かった。 >メイやガルベス、マルティネスなど外国人選手がたくさんいた時期。 >完封した翌日に外国人枠の関係で二軍落ちした事もあった。 >韓国では実績を残してた投手らしいが、こういうのを飼い殺しというのか。 >솔직히 말해서 투구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지만, 이 당시 거인은 쓸데없이 한국인 투수가 넘쳐나고 있었으므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 만은 잘 기억한다. 자료에 따르면 2년 임대 이적이었다는 것. 본인이 희망한 것 같지만,[* 이 부분은 이 사람의 오해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요미우리 쪽이 먼저 영입의사를 밝혔다.] 거인이라는 팀이 좋지 않았다.[* 뉘앙스 상 요미우리의 대우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는 정민철이 팀을 잘못 골랐다는 뜻] >메이, 갈베스, 마르티네즈 등 외국인 선수들이 많이 있었던 시기였다. 완봉한 다음날 외국인 할당량 문제로 2군으로 내려가는 일도 있었다. >한국에서 실적을 남기고 있었던 투수인 것 같지만, 이런 걸 바로 '''기르면서 죽이기飼い殺し'''[* '쓸모도 없는 가축을 죽을 때까지 키운다'라는 뜻으로, 무쓸모한 사원을 한직에 앉혀두고 썩힐 때 하는 말이다.]라고 하는 것이려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