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민철/선수시절 (문단 편집) === 일본 시절 총평 === >先発だと鄭ミン哲ってのもおったけど空気やった >선발이라면 정민철이라는 것도 있었지만 공기였어. 2014년, 한 [[2ch]]유저의 코멘트. 간단히 말해 무지와 안이함이 불러온 결과. 당시 정민철의 몸 상태는 2014년 윤석민과 매우 흡사하다. 구속은 떨어졌지만 "부상당했다"라고 볼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선수 본인이나 영입한 요미우리나 설마설마 했던 것. 사실 정민철은 130개의 공을 던지며 완투나 완봉을 한 경기도 있었고, 2군에서도 꾸준히 성적을 냈다. 즉, 구속 저하는 있었지만 부상이 있어 못 던질 상태도 아니었고, 커맨드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는 얘기. 따라서 1군에서 꾸준히 기용했다면, 특급이나 1급은 아닐지라도 5~6선발로 로테이션 한 축은 그럭저럭 맡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당시에 정민철이 팀에 불만을 품었던 것도,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00년 2군 경기 중엔 144km/h를 기록한 경기도 있었다. 구속 저하 문제를 최우선으로 삼고 컨디셔닝에 주력했다면, 가능성은 낮지만 어느 정도 전성기 때의 폼을 회복했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1, 2군을 오락가락하는 통에 컨디셔닝은 개뿔, 의욕상실에 부담감에 부상까지 발생하는 등 삼중고를 겪어야 했으니. 문제는 그 많고 많은 팀 중에 하필 요미우리였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요미우리는 일본 최고 명문구단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는 팀이고, 소위 말해 '''순혈'''이 아닌 선수에게는 굉장히 냉정한 팀이다. 거기다 정민철은 자기도 모른 사이에 구단 내부의 순혈 vs 비순혈 파벌 싸움에 휘말려들기까지 했다. 정민철 본인이 훗날 “너무 아무 것도 모르고 갔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당시에는 이런 사정에 완전히 무지했다. 결국 정민철이나 요미우리나 최악의 결과가 되어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