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민철/선수시절 (문단 편집) === 2003년 === '''26경기 11승 10패. 방어율 4.00, 139와 2/3이닝, 132탈삼진''' 알고 보면 나쁘지는 않았던 성적. 일단 연봉은 1억원이 깎여 3억에 계약했다.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방어율 4.00이 썩 좋아보이지 않다만, 이 해는 모든 크보 투수들의 성적이 고만고만했던 시절이다. 방어율 1위가 3.01의 '''셰인 바워스'''로 역대 유이한 3점대 리그 방어율 1위를 기록한 시즌. 하지만 2002년과 마찬가지로 기복이 좀 심했고, 이로 인해 이닝을 많이 먹지 못했다. 게다가 이 해 정민철의 뒤를 이어 요미우리에서 복귀한 [[정민태|이름 한 글자 다른 투수]]가 방어율 3.31에 17승을 찍으며 상대적으로 묻히기도 했고.[* 사실은 정민태 역시 망가진 상태에서 [[회광반조]]를 보였던 것이다. 바로 다음해인 04년부터 정민태는 정민철보다 더 못난 성적을 찍어대고 더 빨리 은퇴했다.] 이렇게 정민철이 부활의 기미를 보이자 구단은 연봉을 다시 5천만 원 올려주었다. 정민철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이 해 10월 선수 인생 처음으로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송진우도 이때 같은 병원에서 같은 수술을 받았다.] 한편, [[삼성 VS 한화의 난투극 역사#s-6|경기중 부러진 방망이에 다리를 다친 정민철에게 삼성 선수들이 번트를 해댄 사건]]이 있었던 것이 바로 이 해이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47&article_id=0000031441|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