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7포병여단 (문단 편집) == 여담 == * 전략무기인 [[현무]] [[탄도 미사일]]까지 운용한 적이 있다. '제1000대대'라고 하여 현무 운용을 담당하는 부대가 있었다. [[육군미사일사령부|유도탄사령부]]를 창설한 뒤 [[현무]]의 운용을 유도탄사령부에서 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 적어도 본부와 그 이웃에 마주하는 대대는 신막사 생활을 한다. [[2013년]]경까지 신막사 건설이 완공되었고, 모든 대대 및 근무대가 이제는 신막사에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확실히 구막사 보다는 10명 내의 인원이(기본 6명) 생활하며 침대를 사용하는 신막사가 쾌적하고 시설도 월등하다. 하지만, 반대로 사무실 및 근무지와 거리가 멀어져 확실히 근무지간 이동에 불편함은 존재했다. 하지만 758은 신막사에 식당을 지어주지 않아 구막사가 있는 위병소 근처까지 삼시세끼 10분씩 걸어가서 밥을 먹고오며 비오는날은 우의가 다 젖어가며 먹고 오고 태풍이 오는날은 식사를 위한 버스를 배차하여 먹으러 간다. 662와 663도 식당과 관련에서 문제가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 특이하게도 다른 여단들과는 달리 포병단 편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일한 독립포병여단이다. 이는 자기 편제위주로만 다루는 타 여단과는 달리 7포병은 군단예하 각 기보사단의 포병에 대한 지휘권을 인계받아 써먹을 수 있기 때문. 그렇기에 기보사단 포병은 작전계 업무가 타 포병에 비해 더 많은 편이고 7포병 직속 부대도 마찬가지 신세. * 2013년 초까지는 별명이 제7포상여단이었다. 포상휴가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확실히 [[지휘관]](최창규 소장, 전 [[육군포병학교]]장)인격적으로 장병들을 대우했고 장병 복지에 힘써 휴가나 외박도 잦았다. 2011년 정한기 여단장(육사39기)이 소장 진급과 함께 [[제35보병사단]]장으로 영전하면서 취임한 최창규 여단장은 취임식에서 병사들에게 가장 군기빠진 군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이루어냈다. 식사집합의 폐지 및 삼삼오오 식사하러 가라고 하는 한편 인트라넷 커뮤니티 활성화로 2011년부터 한동안 육군에서 당직 서면서 볼 만한 커뮤니티로 소문나게 됐다. 글 몇개 잘 쓰면 포상휴가도 쏠쏠하게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본인도 소장으로 진급하면서 또다시 정한기 후임으로 사단장에 취임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지휘관 교체와 군 복무기간 단축으로 예전만 못하다. [* 특히, [[윤의철]] 중장 시절에는 온갖 명목으로 휴가를 칼질당했다.]그래도 아직도 지리적 위치는 [[중앙선]]으로 [[용산구]] 등 [[서울특별시]] 중심부로 한 시간 내 진입이 수월하기 때문에 타 근방 부대에 비해 좋은 편이다. 다만, 간부들은 주말출근에 야근이 잦았다. 말 그대로 간부를 갈아 넣은 건데, 그 덕분에 고급간부들이 전방으로 많이 빠졌고, 지원율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 여파로, 심각한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 [[남양주시]] 와의 연계 활동 및 교류가 잦다. 한강정화사업이나 각종 봉사 활동 등을 지원하는 주민 친화형 부대를 표방하고 있다(물론 장병만 주말에 고생한다). * 해병대로 인계된 다연장로켓을 인수하기 위해 [[백령도]]의 [[해병대 제6여단|제6해병여단]]이 한 달간 제7포병여단의 다연장로켓대대에 파견을 와서 각종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파견 온 해병대원들은 철원에서 실행하는 후반기대대전술훈련까지 참가하여 포탄사격까지 무사하게 완수 후 퇴소했다. * [[윤의철]](육사 43기)이 군단장 시절 패악질을 피우는 와중[* 교육사령관으로 [[좌천]]되면서 조용한데 [[서욱]] 당시 [[육군참모총장]](육사 41기)과 [[김승겸]] 당시 [[육군참모차장]](육사 42기)에게 맨날 불려간다는 소문이 있다. 교육사령관으로 재직하면서도 병사들을 힘들게 했는지 휘하 병력이 거의 없다시피한 합참의 [[합동참모차장]]으로 이동했다. 합참차장 이동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영전]]이라고 오해했으나 대장 진급 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 보직이라 육군 중장에게 합참차장은 [[한직]]이다.]에 그나마 영향을 덜받았다는 소문이 있는데[* 여기도 악명 높은 체력단련의 마수를 벗어날 수 없었다고 한다. 다른 예하사단들도 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는 듯하다.] 당시 여단장이었던 [[이귀우]] 장군(육사 41기)도 [[임기제 진급]]이라 곧 전역 예정이었던 것도 있었고 서욱 육군참모총장과 육사 동기였기 때문이다. 이귀우 여단장은 전임 여단장이자 윤의철의 후임 7군단장으로 부임한 [[허강수|전임 여단장]](3사 23기)[* 육사 44기, 학군 26기와 동기급이다.] 중장에게 전역신고를 하였고, 현재 [[배우]]로 활동 중이다. [[분류:대한민국 육군]][[분류:제7기동군단]][[분류:여단]]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