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괄 (문단 편집) === 반론 === '''그러나''' 제아무리 효성왕의 인선이 실책이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승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지휘관인 조괄이었고 그가 이끈 장평대전의 패배는 너무나 참혹하였다. 더군다나 조의 군세가 진에게 아예 싸움도 안될 수준이라 패배가 뻔한 정도였으면 몰라도, 분명히 염파 밑에서는 그럭저럭 잘 싸우던 군대를 부임하자마자 그대로 사지로 몰아버린 것은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전략에 문제가 있었다고는 해도 전술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한 패장을 "명장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옹호적이며 추측에 기댄 것이다. 경험이 일천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도 핑계로 보이는 것이, 조괄의 아버지인 [[조사(전국시대)|조사]]는 마찬가지로 별 군공이 없는 처지에 대장으로 등용[* 심지어 기성 무인들인 염파나 [[악승]]도 승리를 점치기 어렵다 하는 상황에서 조사가 나서게 된 것이다.]되어 알여 전투에서 진나라 명장 [[호양]]을 대파하는 승리를 거둔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로 병법에 밝았다면 첫 출전이라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았으리라는 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괄 아버지가 몸소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단기결전을 요구한 효성왕의 뜻에 조괄이 소신을 굽혔다고 할 만한 증거는 전혀 없다.''' 속전속결을 원하는 왕이 선택한 인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조괄은 왕의 바람을 이루기를 원하는 부류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것도 주위의 결사반대를 무시하면서 기용했다가 패전으로 끝나자 연좌제를 행하지 않았다는 것도 강력한 정황증거에 해당한다. 사실 조괄이 지구전을 선호했을 정도로 신중했다면, 추격전을 시작했을 때 신중하거나 소극적이었어야 정상인데 조괄은 너무 부주의했다. 왕은 속전으로 이기라고 요구했지 무리하게 추격해서 함정에 빠지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명장들이 우주방어로 적을 물리쳐도 퇴각하는 적을 추격해서 섬멸하는 경우는 많다. ''' 그렇기에 조괄이 염파와 똑같이 지구전을 우선시했어도 백기를 추격하다가 반격당해서 장평대전과 똑같은 결말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용 배경을 마속과 비교해도 이쪽이 훨씬 막장이다. 후발주자인 촉한은 원래부터 적은 상황이었고 설상가상 적은 숫자의 인재들이 상당수가 합류한지 얼마가지 않고 죽거나 또는 요절하거나 이탈했다[* [[법정(삼국지)|법정]], [[방통]], [[마초]], [[곽준(삼국지)|곽준]], [[맹달]], [[유봉]], [[황권]] 등.]. 거기다 인재 보는 눈이 좋은 유비는 인원보충을 하기도 전에 이릉대전이 끝나자마자 붕어했다. 상황이 이랬기에 촉한의 인재부족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고, 이것이 마속이 가정 방면을 맡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반면에 조나라는 인재가 부족했다는 기록이 없고 오히려 [[이목(전국시대)|이목]], [[염파]], [[방난]], [[사마상]] 등 많은 명장들이 조나라 출신이었다. 장평대전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포로가 발생했으니 그 과정에서 많은 인재들을 상실했을 것이다. 이릉대전에서 많은 인재가 죽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막대한 병력 손실과 인재 손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랬동안 버텨냈으니 조나라는 인재가 많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물론 이목, 염파 같은 명장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똑같은 [[기전파목]]의 일원인 백기와 왕전이 진나라 소속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목,염파만으로 버티기는 어렵다. 조나라 같이 규모가 거대한 나라의 방위는 인재를 많이 필요로 한다. 소규모 군벌이면 모를까 대국의 방어전은 뛰어난 아랫사람들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쟁사의 뛰어난 총사령관들도 뛰어난 아랫사람들이 있어야 제대로 활약이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즉 실적이 있는 무관 중에서 속전파를 골라도 되는데도 굳이 검증되지 않은 조괄이 왕에게 선택받은 것은, 조괄이 당시 조나라에서 찾기 힘든 극성 속전파라는 증거이자 [[조효성왕]]이 상황이나 사람을 보는 눈이 형편없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덤으로, 마속도 군재는 형편없지만 최소한 참모로서는 자질이 있고 상당한 덕장으로 추정되는 기록이 있기라도 한데, 조괄은 이런 장점은 고사하고 인망이 없다는 둥 축재에 연연한다는 둥의 악평(그의 어머니가 남긴!)만 기록에 남아 있다. 사석에서는 좋은 사람과 사석에서도 욕 먹는 사람의 차이랄까. 결론을 말하자면 조괄은 [[신립|겁쟁이나 불충한 신하는 아니었고 그에게도 할 말이 없지는 않았지만 결국 역사에 졸장으로 기록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