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양은 (문단 편집) === 본격적인 활동 === 1969년부터 서울에서 세력을 키우다가, 무교동의 조창조, 정학모, 오종철[[https://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25|#]] 세력에 편입됐다. 1975년 그들의 지령을 받고[* 다만 조양은에 따르면, 윗선의 명령보다는 자신이 주도적으로 행했다고 한다. 이는 오종철의 증언하고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사보이호텔에서 [[신상사]]를 습격했으나 맹렬한 반격을 받아 전쟁은 결국 무교동파 세력의 패배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62&aid=0000001777|끝나고 말았다]]. 언론에 알려지기로는 이때 칼부림을 해 [[김두한]] 시절의 낭만파 주먹의 계보를 끊고, 속칭 말하는 조폭시대를 연 장본인으로 [[회칼|사시미칼]]을 사용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사보이호텔 습격 당시에 회칼은 쓰이지 않았으며, 조양은을 비롯해서 관련자들도 꾸준히 칼을 썼다는것은 부인한다. 실제로 조양은은 도망다니다 체포 된 뒤 사보이호텔 사건으로는 1심에서 실형 1년, 2심에서 징역 10월에 집유 2년으로 풀려나왔는데, 칼을 써서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면 그런 형량은 불가능하다. 한편 조양은은 호남선배들이 자신과 맞붙힐려고 픽업해온 [[김태촌]]이 처음으로 칼부림을 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조폭]]의 무기사용은 해방 이후부터 흔했다. 소위 선후배간의 위계질서를 존중했으니, 무기를 안쓰고 일대일 주먹 싸움만 했다느니 하면서 낭만파 주먹이라는 하는 것은 모두 후대의 [[미화]]이다. 오히려 해방 직후부터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 시절에는 [[이성순|칼과]] [[충정로 도끼 사건|손도끼]]는 물론 [[단성사 저격 사건|총격전]]도 서슴지 않았으니 오히려 군사정권 시절에 조폭들의 무기사용이 줄어든 셈이다.[* 어쩌면 당연한게 자유당 시절에는 군대와 경찰조직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무능하고 부패한 인간들이 대부분이라 치안이 상당히 불안했다. 이 때문에 군과 경찰이 조폭을 대대적으로 소탕하기보다 자기 입맛에 맞는 이들을 적절히 이용해먹는 식으로 대처했는데 이런식으로 득세했던 이들이 바로 '''[[김두한]]과 [[이정재(조직폭력배)|이정재]]'''였다. [[5.16 군사정변]] 이후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폭력조직을 대대적으로 소탕하고 경찰 병력을 크게 증강시키는 한편 중앙정보부와 국군기무사령부(당시 국군보안사령부) 등이 잇다라 창설되면서 조폭들이 이전처럼 총질을 하고 도끼로 사람을 난자할 수 있는 여건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이전까지는 경찰력의 문제로 조폭들이 거리에서 삥을 뜯거나 행인들을 위협하는 일이 꽤 흔했었다.] 이 사보이 호텔 사건은 참 잘못 알려진게 많은데 대표적으로 조양은에게 신상사가 패배하거나 칼에 맞아 [[은퇴]]했다는 설이다. 실제로는 조창조, 정학모, 오종철, 조양은 세력의 [[https://shindonga.donga.com/Library/3/01/13/107790/4|완패]]로 끝났다.[* 신상사는 90살이 다 된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2022년 현재, 지금도 살아있다.] 이 일로 조양은은 [[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975337&ctg=12&tm=i_b|생명의 위협을 받아 도망다녔다.]] 조양은의 자서전에 따르면 3년간 도망다니면서 보디가드를 50명씩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이때 대구의 동성로파와 부산의 [[칠성파]] 등 경상도 선배들이 많이 도와줬다. 김태촌과 조양은측은 서로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으나[* 이때 서로 구치소에서 만난 조양은과 김태촌은 잠깐 화해를 했다고 하는데, 조양은이 오종철을 담근 김태촌을 결국 용서하기 어려워서 다시 서방파 식구를 찌르고 전쟁이 재발했다. 다만 조창조가 신상사 회고록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같은 조직이었던 정학모와 오종철의 갈등으로 학모 쪽 사람들의 '장난질'이 있었고, 그런 모종의 작용으로 인해 오종철이 김태촌에게 당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그런 알력다툼탓인지 막상 조양은은 오종철의 복수를 하겠다고 했지만은, 시원하게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즉 조창조는 조양은이 나름의 전략적 판단을 했다고 봤다.] 결국 1978년 화해하고 조창조가 신상사에게 사과하면서 함께 데려가서 사과를 시켰다고 한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10962720#home|#]] 이후 기존 조직원들을 모아 1978년 정식으로 양은이파를 출범시켰다. 1980년대에는 OB파[* 정확히는 이동재가 이끌던 OB동재파. 처음 조직이 [[광주광역시]] [[OB맥주]] 공장 일대에서 출발해서 경찰이 붙인 이름이 OB파. 사실 저런 양은이파, 범서방파 등 조직들의 이름은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 경찰이나 언론에서 붙인 이름이다.]와 양은이파, 범서방파(두목 [[김태촌]])와 함께 언론에 알려지기로는 전국의 3대 조폭으로 불렸으며,[* 그러나 조폭계 인사들은 소위 3대 패밀리는 언론이 키운 과장이라고 깎아 내리기도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62&aid=0000000450|출처 - 김태촌, 조양은은 주먹사회 패잔병 부분]]. 실제로 조씨는 80년에 바로 구속되어 15년 동안 감옥에 있어 조직 운영은 부하들이 대행체재로 운영을 했다.] 그중 조양은은 양은이파를 이끌었다. 둘 사이에는 미묘한 갈등이 있었는데, [[나이]]로는 김태촌이 조금 더 많지만 조양은이 더 빨리 상경해서 전국구 조폭이 되었으며, 특히 [[신상사|신상사파]]와의 항쟁으로 조양은이 세력도 커지고 적도 많아지면서 조폭계의 핫 아이콘이 되자 김태촌은 호남계 선배들의 힘을 업고 조양은을 치게 된다. 여기에 김태촌을 견제하기 위해 불러들인 이동재가 OB동재파로 성장하면서 1980년대를 주름잡게 되는 3대 조폭의 항쟁이 시작된다. 한참 후의 각자의 회고담도 웃긴데, 조양은은 자기가 주도해서 김태촌, 이동재와 만나서 자기가 큰 형, 이동재가 둘째, 김태촌이 막내가 되기로 하고 항쟁을 끝내자고 했으나 김태촌의 배신으로 계속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태촌은 자기가 나이가 가장 많고 이동재는 한참 어린데[* 이동재는 [[1951년]]생이다.] 무슨 큰형이 조양은이었냐면서 그때의 만남은 호남 조폭 선배가 불러서 얼굴 한 번 봤을 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1980년에 광주로 갔다가 [[신군부]]에 체포되어 [[재판(법률)|재판]]을 받고 15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이때 2인자 강영신 등 주요 조직원들이 한꺼번에 잡혀 모두 중형을 받으면서 세력이 급감했다. 자서전에 따르면 조양은은 공주[[교도소]]에서 고래회도 먹는 등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또한 [[김대중]]의 아들과 통방했다고도 하며 재야 정치인들과도 인연을 맺었다고 주장했다.[[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30302010334443&p=ilgansports|#]] 그뿐만 아니라 88올림픽 전 일주일간 [[귀휴]]를 나오기도 했는데 당시 귀휴는 거물급이 아니면 거의 허락되지 않았다. 한편 공주교도소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송악파 부두목인 강병한의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704100010|증언]]을 보면 대충 유추가 가능하다.] 이감된 [[순천교도소]]에서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6/08/28/1996082870320.html|1990년 난동]]을 배후조종 하는 등, 수감 생활은 그리 얌전하게 보내지는 않았던 듯 하다.[[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30305115303230&p=ilgansports|#]] 순천교도소 사건 이후 조씨는 [[대전교도소]]로 이감됐다. 이때 독방생활은 혹독해서 조씨도 힘들었다고 한다.[* 사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고 유명한 사람들이 교도소에 들어가면 대부분 독방을 배정해준다. 다만 이게 특혜차원이 아니라 유명 정치인이나 재벌 등이 일반 수용자들과 섞이면서 있을 수 있는 소요사태 등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일례로 징역형을 확정받아 수감생활을 했던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전직 대통령은 모두 독방을 배정 받았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역시 모두 독방을 썼다. 이외에도 조양은 같은 전국구 조폭이 교도소에 올 경우에는 조폭들끼리 싸움이 붙을 것을 대비해 조폭 수감자들과 철저히 분리시킨다고.] 이후, 진주교도소, [[청주교도소]], [[대구교도소]]를 돌아다녔다. 한편 조양은이 구속된 시기 양은이파는 순천시민파와 순천중앙파의 갈등에 끼어들어 시민파 두목 오철묵을 지원해 순천중앙파를 누르고 순천시민파와 동맹을 맺었다. 감옥에 있던 조양은을 대신해 휘하에 들어간 순천시민파 두목 오철묵(오상묵)과 조씨의 부두목인 백영두[* 여담이지만 [[씨제스 스튜디오|씨제스 엔터테인먼트]] 대표 백창주의 아버지이다. 박유천 사건 때 또 화제가 되었다.[[https://www.dispatch.co.kr/541313|#]],[[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6/06/22/2016062200018.html|#]]]가 조직을 관리했다. 이때에 80년대 성장한 OB파 이동재가 세력을 키워 양은이파를 흡수하기 위해 전쟁을 걸어왔다. 양은이파 조직원 2명이 칼에 맞아 불구가되자, 오철묵은 강창호와 최낙원 등을 시켜 이동재를 작업하라고 지시했다. 1988년 식당에서 식사 중이었던 이동재가 양은이파 작업조에 습격당해 중상을 입고 은퇴하였다. 이후 이동재는 미국으로 떠난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437598#home|#]] 한편 1989년에 조직을 배신한 골든벨스탠드바 주인 박정세[* 순천시민파의 부두목으로 보인다.]를 행동대장 심경숙, 조직원 김태형, 임시택 등을 시켜 내부숙청을 해 박정세를 마구 칼로 찔러 살해하려고 하였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Detail.asp?newsClusterNo=01100201.19900216000001806|#]],[[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19960930022003|#]] 허나 이 같은 연달은 칼부림은 오철묵과 양은이-순천시민파에게 큰 타격을 입혔는데 1990년 개시된 [[노태우]] 대통령의 [[10.13 특별선언|범죄와의 전쟁]]때 오철묵과 조직 주요 간부들이 대거 잡혀가 중형을 받으면서 세력이 급감하고 만 것이다. 아무튼 조양은은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으며 95년 3월에 [[출소]]했다. [[파일:external/cfs13.blog.daum.net/4847f0222d7a5&filename=1277757.jpg]] 아직 수감중이던 1994년에는 통역사였던 김소영씨와 옥중 연애를 하고 결국 1995년에 출소 직후 [[결혼]]을 한다.[* 당시 그의 나이 46세였다. 지금도 늦은 편인데 당대로 친다면 [[노총각|매우 늦은 나이에 결혼한 셈]]. 다만 조양은의 경우 감옥생활을 오래했으니 뭐 어찌보면 늦은 결혼이 당연할지도.] 결혼식은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했고 주례는 [[조용기]] 목사. [[김용건]], [[김수미]], 현역 국회의원으로는 [[이명박]], [[김덕룡]], [[정호용]], [[김형오]], [[정재철]], [[유수호(정치인)|유수호]], [[백남치]], [[박명근]], [[김호일]], [[신순범]], [[이철]], [[최재승]], [[성무용]]이 화환을 보냈다. '''옥중중매'''를 서준 사람이 같은 조폭인 [[조일환(1938)|조일환]][* 김두한의 후계자로 알려진 그 사람 맞다. 같은 본관 성씨라서 친동생같이 챙겼다고. 여담으로 조양은이 회칼을 잘 쓰는걸로 알려진 것과 같이 이 사람도 칼을 상당히 잘 다뤘다고 한다.]인데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아주 가관이다. 조일환이 자신의 [[지인]]인 조양은의 현 장모에게 조양은의 정체를 '''"[[전두환]]에게 찍혀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는 민주화 투사"'''라고 속였고, 조양은의 장모가 거기에 낚였다고 한다. 김모씨는 조양은이 출소할 때까지 조폭인 줄 몰랐고 얼마 뒤에 조폭부하들이 인사하러 찾아왔을 때 알았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