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일전쟁 (문단 편집) == 서론 == ||{{{#!wiki style="margin: -6px -10px" [youtube(bZHr1jpQ97I)]}}}|| || 중일전쟁의 1분 전개[* [[만주 전략 공세 작전]]은 생략되었다.] ||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은 초기 일본 제국군의 공세로 중국군이 밀리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중국은 [[화북]] 지방을 상실하고 [[상하이 전투]]에서 대패한 뒤 수도인 [[난징]]까지 함락되며 수세에 밀렸다. [[1938년 황허 홍수]]를 통해 일본군의 진군을 저지하려 시도했으나 이는 실패하고 수많은 중국인이 사망하거나 난민이 되었다. 전쟁이 시작된 1937년부터 1941년까지는 이렇게 중화민국 홀로 일본 제국과 격렬한 전쟁을 하는 양상이 이어졌으나, 전쟁이 장기화되자 일본 제국이 [[진주만 공습]]을 행하면서 중일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에 포함되었다. 이후 일본 제국이 서방 연합국과의 전투에서 패착을 거듭하면서 일본군의 전력은 급속도로 쇠퇴했으며, 1944년 즈음에 일본은 [[대륙타통작전]]을 개시하면서 반격을 꾀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일본 제국이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와 [[만주 전략 공세 작전]]으로 1945년 9월 2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자 중일전쟁 또한 종결되었다. '''사상자는 무려 2,000만 명'''에 달했으며,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소전쟁]]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장 많이 발생한 인명피해였다. 소련이 독일을 완전히 밀어낸 [[독소전쟁]]과는 달리 중국은 일제를 밀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종전이 되었기에, 과거에는 무능한 [[국민혁명군]]과 폭주하는 일본군의 일방적인 전쟁으로 인식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빈약한 공업력에 낙후된 농촌사회[* 전황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일본군은 그냥 만주에서부터 밀고 내려오는게 아니라 동부의 쓸만한 해안가나 항만들은 다 찔러보면서 점령했고, 남방작전으로 인도 일부와 버마까지 장악하며 중국의 뒤까지 틀어막았다. 그래서 중국군은 서쪽으로 밀려난 상태에서 항전을 해야 했다.]를 이끌고 [[무기대여법]]의 이득조차 거의 보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이 수백만명에 달하는 일본군을 대륙에 묶어두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 전사자의 30%를 담당했다는 점에서 재평가되고 있는 추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