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차명주 (문단 편집) ==== [[한화 이글스]] 시절 ==== [[파일:/image/001/2006/10/29/kp1_2061029p2591.jpg]] [[한화 이글스]] 시절. [[김인식]] 감독이 물러난 후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가 있었다.[* 김인식과 김경문은 스타일 차이가 컸는데 김인식은 전반적으로 인화력으로 팀을 이끌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크게 터치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경문은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를 부정적으로 보고 [[심재학]], [[정수근]] 등을 차례로 정리했다.] 2004년 시즌 중 [[임재철]](+ 5000만원)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한화 이적 후에는 두산 시절 말년과 마찬가지로 주로 [[원 포인트 릴리프]]로 나왔다. 하지만 한화에서는 두산 시절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고, 한 점 차 박빙인 상황에서 등장해 동점주자를 홈인시킨 뒤 그 다음에 잘 막아서 구원승을 무려 7번이나 기록했다. 더구나 소화하는 이닝도 해마다 줄어들어서 [[한화 이글스]] 팬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0⅓이닝의 신화였다. 매일같이 등판하지만 올라올 때마다 한 타자만 잡고 내려가서 생긴 별명이다. 그 예로 2005년에는 1군에서 77경기에나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소화한 이닝은 33이닝에 불과했다. 그나마 유승안 감독 시기에는 관리를 받기라도 했지 2005년에는 김인식이 다시 감독으로 오면서 등판경기수가 많아졌고, 결국 평균자책점 5점대를 찍으면서 하락세를 보여주었다. 은퇴하던 해에도 50경기 이상을 등판했지만 주로 좌완 스페셜리스트로 나와서 이닝 수는 적었다. 2006 시즌 후 FA를 선언했으나 소속팀 우선협상 기간에 [[한화 이글스]]가 '''재계약을 거부했고''' 이후에도 불러 주는 팀도 없자 자신도 현역 생활에 대한 욕심이 더 이상 없어서, 아직 선수 생활을 더 이어나갈 수 있었음에도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