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채동하 (문단 편집) === 사망 === [[2011년]] [[5월 27일]],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 S아파트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 발견된 날은 5월 27일이나 사망 추정 시각은 [[5월 26일]] 저녁이다. 그래서 유골함에도 사망 날짜가 2011년 5월 26일로 되어있다.] 옷방에서 이어폰을 꽂은 채로 숨져 있었다고 전해지며, 외부 침입 흔적이 없어 타살은 아니라고 추정되었다. 유족의 뜻에 따라 5월 30일 부검을 실시했지만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최종 사인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2009년]] [[7월 9일]], 생애 첫 매니저이자 본인에게 너무 소중한 매니저였던 매니저 장모 씨가 자살로 숨졌던 일도 큰 영향이 되었던 것 같다.[[https://www.tvreport.co.kr/120662|#]] 에 실린 수필에서 '''"심장의 절반이 날아간 듯 하다."'''고 언급했다.] 본인이 열심히 작업한 앨범이 건강 문제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냈고,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이 컸다는 점 또한 채동하를 괴롭힌 것으로 추정된다. [[5월 27일]]은 일본 [[도쿄]]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일본에서는 프로모션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에 귀국한 사실도 소속사에 알리지 않아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까지도 일본 소속사는 채동하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를 찾아 매니저가 자택을 방문했지만 인기척이 없어 119에 신고, 구조대가 출동하여 베란다를 통해 들어갔으나 안타깝게도 명을 달리한 상태였다. 주변에서 그를 본 사람들은 평소에는 짧은 외출에도 단정한 모습이었으나 자살 며칠 전부터는 초췌한 모습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며칠 전까지 매니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고 자신의 콘서트에 대한 홍보도 하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더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연락이 닿지 않는 와중에도 콘서트 준비는 속행되었고, 공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서야 소식을 들은 일본 측 스태프들은 입장만 기다리고 있던 수백 명의 팬들에게 '''채동하의 자살 소식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전달해야 했다.''' 공연은 생전 [[SG워너비]] 활동과 [[일본]]에서의 활동을 담은 영상들을 편집해서 상영했고, 관련 스태프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추도문을 낭독하는 등 추모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팬층이 거의 30~50대 여성이라 눈물바다가 되었지만 다행히 큰 소란은 없었고 조용히 공연은 막을 내렸다. 당시 기준으로 한달도 안 남은 채동하의 생일에 맞춘 미니앨범 쇼케이스와 팬클럽과 함께 하는 생일파티 등이 이뤄질 예정이었다는 소식과 팬카페에 며칠 전에 올라왔던 밝고 기대감 넘치는 글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으며, 더욱이 그의 사망 소식과 더불어 기부, 봉사 등 각종 선행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더욱 더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다.[* 채동하는 [[SG워너비]] 탈퇴 이후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네팔]]에 여러 번 방문하여 현지에서 밀알학교 건축 현장에서, 그리고 장애인들을 위해서 봉사하였으며, 특히 [[2009년]]에는 한 다큐멘터리에서 봉사활동에 전념하는 모습이 비춰지기도 했으며, [[2010년]]에는 [[네팔]] 아이들, 그리고 국내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해 학습 용품을 기부하고, 독거노인들을 위해 쌀을 보내는 등 선행을 해오기도 하였다.] 소속사에선 채동하의 추모 앨범이 계획되어 있었고, 생전에 작업했던 데모곡 '눈이 기억하는 사람'을 발표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잊혀진 것을 보면 오보일 가능성도 있고,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3&dirId=302140101&docId=135622640&qb=7LGE64+Z7ZWYIOuNsOuqqOqzoQ==&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mobile|질문한]]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3&dirId=30201&docId=221735024&qb=7LGE64+Z7ZWYIOuNsOuqqOqzoQ==&enc=utf8§ion=kin&rank=2&search_sort=0&spq=0&mobile|흔적만]] 있다. 답변에 의하면 유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채동하의 죽음에 대해 전 소속사 [[김광수(음반기획자)|김광수]] 대표는 안타깝다며, 팀을 떠난 지 6개월 정도 지나 채동하가 찾아왔을 때 ‘언제 SG워너비로 다시 한번 뭉쳐보라’고 제안하자 긍정적인 반응이었다"면서 ‘팀을 나가보니 소중함을 알겠더라’고 했다"고 전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2298476|#]] 이는 고인에 대한 예의는 갖다버린 언플이었고, 김광수의 만행을 아는 팬들을 그야말로 [[피꺼솟]]하게 만든 발언이었다.[* 애초에 김광수는 이런 식으로 자신이 소속 연예인들과 사이가 좋은 것처럼 자신과 소속 연예인들의 관계를 미화하면서 실상은 소속 연예인들을 돈 버는 기계로 여기며 마구 부려먹은 간사하고도 비인간적인 인물이다. 심지어 [[김종국|이 사람]]에게는 정신적 피해는 물론 '''물리적 피해까지 안겨 주었다.''' ] [[김진호]]는 소식을 듣고 빈소에서 가장 많이 오열하다 겨우 일어섰고 [[김용준]] 역시 매우 슬퍼하였으며 그의 장례식 때 그의 영정사진을 들고 발인까지 함께했으며 교체된 멤버라 평소 크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 [[이석훈]]도 끝까지 그의 빈소에서 자리를 지켰다. 탈퇴 없이 4명이서 함께했다면 좋았을텐데 여러모로 슬프고 안타까운 부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