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경자 (문단 편집) === 미국으로 떠난 이후 ===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으로 떠난 뒤 그녀의 작품 가격이 치솟아서 [[2023년]] 현재도 그녀의 작품은 미술시장에서 가격이 가장 치솟은 작가로 꼽힌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당연한게, 공급은 끊겼는데 수요는 이슈화되면서 올라갔으니 가격이 오를 수 밖에 없다. 사실 상당수 작가들이 죽어서 뜨는 경우가 많다. 재주는 예술가가 부리고 돈은 콜렉터들이 버는 경우도 많다.] 2003년에 호당 1,000만원대이던 그녀의 작품은 2023년 현재는 호당 4,000만원대를 호가한다는 것.[* 하지만 이는 해외 예술시장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다. 해외에서야 1,000억원이 넘는 작품도 경매에서 나오니. 전반적으로 한국예술시장은 규모가 초라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해외 예술시장이 그만큼 투기 열풍에 휩싸였다 봐야겠지만.] 그녀가 [[1998년]] 미국으로 떠난 뒤 공개적인 작품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고가는 계속 될 거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런 탓에 그녀의 작품의 다른 위작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다 [[2003년]] 초 [[뇌일혈]]을 일으켜 거동은 커녕 말하는 것조차도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고, 결국 작품활동은 중단되었다. 이후 [[2006년]] 갤러리 현대[* [[1973년]], [[1974년]], [[1978년]], [[1980년]]에 1번씩 천경자의 개인전을 개최한 이력이 있다.]에서 장녀 이혜선의 협조로 전국 각지에 흩어진 채색화와 드로잉, 미완성 작품 등을 모은 대규모 개인전이 열렸고, [[2007년]]에는 새로운 화집 "천경자-그 생애 아름다운 찬가"가 발간되었다.[* 다만 비매품이다.] 한편으로 그녀는 고향 고흥군에 [[2007년]] 드로잉과 판화 66점을 기증하고 고흥군은 이를 고흥군 종합문화회관내에 천경자 전시실을 설치해 전시했으나 고흥군의 무성의한 작품 보존 행태에 분노한 그녀는 [[2010년]] 작품 반환을 요구했다. 작품에 손상을 가하는 [[할로젠 원소|할로겐]] 전구를 전시실 조명으로 쓰는가 하면 심지어는 청소용구를 보관하는 창고에 작품을 보관하는 등의 행태를 듣고 분노한 그녀[* 정확히는 그녀의 장녀인 이혜선. 2003년 천경자가 뇌일혈로 병상에 누운 뒤부터 작고할 때까지 사실상 천경자의 대리인 행세를 했다.]가 작품 반환을 요구하게 된 것. 고흥군은 결국 [[2012년]] [[3월]]에야 반환을 결정했지만, [[12월]]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작품의 상태에 대해서 또다시 문제가 밝혀지고 천경자 측과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결국 반환했다. 헌데 [[2014년]]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천경자의 딸 이혜선 씨가 일부러 천경자의 죽음을 숨기고 계속 예술원 수당을 지급받고 있다는 것. 2014년 천경자는 외부와 접촉을 끊은 채 살고 있는 상태. [[공예가]]인 딸 이씨의 증언에 따르면 "거동은 어렵지만 의식은 있는 상태"라고는 하는데, 예술원은 수당 지급 문제로 천경자의 근황을 확인하려고 지난해부터 이씨에게 공문을 보내 천경자의 의료기록 등을 요구했다. 이씨는 이 같은 요구가 천경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예술원은 지난 2월부터 수당 지급을 중단했고, 이씨는 회원 탈퇴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예술원은 천경자 본인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퇴 처리는 하지 않은 상태다.[[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4/06/12/14514048.html|#]] 천경자의 딸 이씨의 경우 고흥에 기증했던 작품들도 관리를 허술히 했다는 이유로 천경자미술관 건립을 무산시켰고,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된 작품도 반환을 요구하였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79291.html|당시 기사]] 이에 대한 장녀 [[http://www.nocutnews.co.kr/news/4314209|이혜선의 해명]].] [[2014년]] [[6월 27일]], [[MBC]]의 '[[리얼스토리 눈]]'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그런데 천경자가 [[2015년]] [[8월]]에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유족들[* 정확히는 장녀 이혜선을 제외한 나머지 유족들. [[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89151|기사]]에 따르면 나머지 유족들은 어머니의 은행 통장 해지 전화를 받고 나서야 어머니의 죽음을 알았다고 한다. ]은 천경자의 유골의 위치를 모른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그녀의 장녀 이혜선 때문이라고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27/2015102702718.html|#]]. 후에 장녀는 어머니의 유골을 [[허드슨 강]]에 뿌렸다고 밝혔다[[http://news.donga.com/3/all/20151110/74685946/1|#]] . [[2016년]]에는 작고 1주기를 맞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기증작품을 중심으로 한 추모전이 개최되었고, 같은 해 미술평론가 최광진[* 前 호암미술관 큐레이터. 1995년 천경자 회고전을 기획했다.]이 집필한 "천경자 평전-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이 간행되었다. [[2019년]]에는 천경자화백 큰며느리 유인숙이 쓴 "미완의 환상여행"(이봄-문학동네)이 간행되었다. 저자는 결혼 첫해인 1979년부터 1998년 천화백이 미국으로 이주하기까지 곁에서 일상을 함께했다. 1990년대 일상이 담긴 천화백의 수필은 그동안 찾아볼 수 없었다. 유인숙 저자는 천화백의 전성기였던 1979년 서교동시절부터 압구정한양아파트에서 살기까지의 일상을 묘사한다. 천화백은 가족을 모델로 작품을 그려왔는데, 1979년 이후에 자식들이 유학 혹은 해외 출장을 간 후 큰며느리가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모델을 한 작품은 ‘노오란 산책길’, ‘황금의 비’ 포함한 여러 작품이 있다고 한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470666|#]] 2021년에는 작품 ‘노오란 산책길’을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했었다.(전시기간 2021.7.21.-2022.6.6.)[[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55323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