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성관 (문단 편집) == 생애 == [[1957년]] [[10월 9일]] [[충청남도]] [[논산시|논산군]](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에서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26464|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 1982년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사법연수원 기수]]는 12기.[* [[문재인]], [[박원순]], [[고승덕]], [[조영래]] 등이 사법고시, 사법연수원 동기다.] [[군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친 천성관은 [[1985년]] 검찰에 임관한 이후 주로 공안 계통에서 일했다. [[1993년]] 남한조선로동당 사건, [[이진삼#s-3.1|이진삼 육군정보사령관 국내 정치 개입사건]][* 여담으로 천성관이 군법무관으로 임용되어 21사단 법무실에서 일할 당시 모셨던 사단장이 바로 이진삼이다. 이진삼은 이 일로 인해 구속되어 구치소 신세를 졌고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나긴 했으나 천성관에게 배신감을 느껴 본인의 자서전에서 천성관을 정치검사, 기회주의자에 배은망덕한 인간이라며 쌍욕을 퍼부었다. 심지어 아내의 장례식에 조문을 온 천성관에게 배빵까지 날렸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천성관이 검찰총장에서 낙마할 당시 이진삼이 꽤나 통쾌해했다고(...)], [[1998년]] 영남위원회 사건 등을 수사했다. [[검사장]] 승진 이후에는 울산지검장, 수원지검장 등을 지냈다. 울산지검장으로 있을 때 여간첩 원정화 사건의 수사를 지휘했다. 2009년 1월, 고검장 급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한 후 [[PD수첩#s-2.2|PD수첩 광우병 보도]] 수사,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건]] 수사 등을 이끌었다. 이때 [[이명박 정부]]의 입맛에 맞게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9년]] [[6월 2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 후임으로 지명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