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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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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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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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천성관 (千成寬)
출생
1957년 10월 9일
충청남도 논산시
학력
경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현직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경력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제12기 사법연수원 수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안1부 부장검사
대검찰청 공안기획관
수원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부산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
서울고등검찰청 차장검사
울산지방검찰청 검사장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검사장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1. 개요
2. 생애
3. 낙마
4. 이후
5. 가족관계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직 검사이자 법조인이다. 본관은 영양(潁陽)[1]


2. 생애[편집]


1957년 10월 9일 충청남도 논산군(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 1982년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사법연수원 기수는 12기.[2]

군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친 천성관은 1985년 검찰에 임관한 이후 주로 공안 계통에서 일했다. 1993년 남한조선로동당 사건, 이진삼 육군정보사령관 국내 정치 개입사건[3], 1998년 영남위원회 사건 등을 수사했다.

검사장 승진 이후에는 울산지검장, 수원지검장 등을 지냈다. 울산지검장으로 있을 때 여간첩 원정화 사건의 수사를 지휘했다.

2009년 1월, 고검장 급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한 후 PD수첩 광우병 보도 수사,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건 수사 등을 이끌었다. 이때 이명박 정부의 입맛에 맞게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9년 6월 2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 후임으로 지명되었다.


3. 낙마[편집]


그러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천성관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터져나왔다. 위장 전입 문제는 본인이 시인했다. 아들이 전산 추첨으로 강남구의 한 고등학교에 배정받자, 영등포구의 처형 주소로 위장 전입해 전학시킨 후, 다시 20일 만에 강남구로 주소를 옮겨 원래 배정받았던 학교와는 다른 학교에 진학시켰다.

스폰서 검사 의혹도 불거졌다. 박영선, 박지원민주당 의원들은 천성관이 한 사업가로부터 차용증 없이 15억 원을 빌리고 그와 함께 골프 여행을 했다는 스폰서 관계가 아니냐며 추궁했다. 또 다른 지인으로부터는 부인이 고급 승용차를 무상으로 제공받았다는 사실도 폭로됐다. 천성관의 불투명한 재산 증식은 의혹을 더욱 증폭했다.

여기에 병역비리 의혹도 더해졌다. 아들이 비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한 게임업체의 산업기능요원으로 선발됐기 때문이다.

천성관은 위장 전입 문제를 제외한 의혹들에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7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검찰총장 지명 철회를 단행했다.# 정동기 민정수석이 사표쓴 것은 덤. 이 당시 검찰 내에서 이 청문회를 보면서 상당한 비토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의 청문회는 한국 정치판에서 상당히 모범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야당에서는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합당한 질의를 하였으며, 대통령도 청문회를 보면서 야당을 무시하지 않고 지명 철회를 하는 등, 바람직한 야당과 바람직한 대통령의 모습을 서로 보여주었다. 물론 천성관의 의혹이 워낙에 심각한 수준이라 대통령이 누구라한들 지명 철회를 안 하기엔 어렵긴 했다.


4. 이후[편집]


2011년부터 김앤장에서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


5. 가족관계[편집]


부인 김영주 여사와 1남 1녀가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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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양 천씨 종친회 부회장을 역임한 적 있다.[2] 문재인, 박원순, 고승덕, 조영래 등이 사법고시, 사법연수원 동기다.[3] 여담으로 천성관이 군법무관으로 임용되어 21사단 법무실에서 일할 당시 모셨던 사단장이 바로 이진삼이다. 이진삼은 이 일로 인해 구속되어 구치소 신세를 졌고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나긴 했으나 천성관에게 배신감을 느껴 본인의 자서전에서 천성관을 정치검사, 기회주의자에 배은망덕한 인간이라며 쌍욕을 퍼부었다. 심지어 아내의 장례식에 조문을 온 천성관에게 배빵까지 날렸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천성관이 검찰총장에서 낙마할 당시 이진삼이 꽤나 통쾌해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