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기사파 (문단 편집) == 개요 == [[바실리 칸딘스키]]가 1911년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1880~1916), [[아우구스트 마케]](August Macke), [[파울 클레]](Paul Klee), 그리고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와 함께 청기사파(Der Blaue Reiter)를 조직해 뮌헨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1930년 칸딘스키가 회상한 바에 따르면 '청기사'라는 명칭은 마르크가 살았던 진델스도르프(Sindelsdorf)의 뒤뜰에서 두 화가가 커피를 마시다가 생각해낸 이름이라고 한다. 마르크가 좋아하는 말, 칸딘스키가 좋아하는 기사 모티프에 둘이 다 좋아하는 청색을 더해서 즉흥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칸딘스키는 1912년에 출간한 저서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Über das Geistige in der Kunst)』에서 "푸른색은 심화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 인간을 무한의 세계로 이끌어 들이고, 순수에 대한 동경과 드디어는 초감각적인 것에 대한 동경을 인간에게 일깨워 준다. 푸른색은 하늘의 색깔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마르크에게 동물이 영적인 순수함의 상징이었다면 칸딘스키에게 청색은 물질주의에 대항하는 정신성의 상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칸딘스키가 오르피즘으로 유명한 로베르 들로네에 영감을 받은 인연으로 들로네를 청기사파에 합류시켜 활동하기도 했다고 한다. 칸딘스키나 클레는 굉장히 잘 알려진 화가들인데, 이는 이들이 후에 [[바우하우스]]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크와 마케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에 징집되어 전장에서 전사하는 바람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분류:미술 사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