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담사상 (문단 편집) === 교조적 유가사상에 따른 후한 제국의 몰락과 심각한 파열 === 결국 이렇게 교조화된 후한 말기의 유가는 정작 유가사상에서 목표로 하는 충성, 효도, 예절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부작용을 보이게 된다. 당시 교조화된 유가사상은 현실과의 엄청난 괴리를 가저왔다. 한 나라의 어버이여야 할 [[영제(후한)|황제가 적접 벼슬을 사고 팔거나]], 정통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후소제(후한)|어린 나이에 즉위해서 외척에게 휘둘리는 등]]의 상황이 일어나도 당대의 학자들은 이를 제대로 지적할 수가 없었다. 이런 현실과의 괴리 때문에 더더욱 교조화되었고 역으로 이런 교조화된 유가적 전통을 엄격히 지켜 엄청난 정치적 자산을 획득한 이도 있었다. 바로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원소(삼국지)|원소]]로 원래는 얼자에 불과했던 원소가 그렇게 높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다른 사람은 3년상도 하기 힘든데도 아버지와 정실인 어머니까지 더한 6년상을 완벽하게 해냈기 때문이었다. 훗날을 보자면 원소의 이런 행동도 어디까지나 쇼였을 뿐 진정한 효자는 아니었지만 당대의 유학자들 입장에선 이 위선을 유교적인 틀 안에서 지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 아버지와 정실인 원술의 어머니의 상을 완벽히 치루었다는 표면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쉼 없이 반복되다 보니 후한 말기에는 교조적으로 유가적인 전통을 따르다가 이리저리 털리며 몰락하는 지식인 vs 비윤리적인 선택을 반복함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는 제후와 그 가신들로 대표되는 혼란이 막을 올렸다. 여기에 더해 후한 말기의 혼란 및 조씨의 위나라가 사마씨의 진나라로 교체되는 등 잦은 정치적 격변이 발생하면서 지식인과 귀족 사회에서는 정치에 실망하여 은둔하거나 신변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세속의 일이나 민생에 관한 논의를 피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래서 산림에 은거하여 청정무위의 담론을 나누었다는 [[산도]], [[왕융]], [[유영(서진)|유영]], [[완적]], [[완함]], [[혜강]], [[상수]] 등의 '''[[죽림칠현]]'''이 등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