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촛불예비군 (문단 편집) == 활동 == [[촛불집회]] 내에서 예비군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본격적인 예비군 훈련 시기인 [[5월]] 이후였다. 참여자들 중에 예비군 훈련을 받고 바로 온 사람이 있었고, 보통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는 보기 힘든 이들의 군복때문에 눈에 띄었던 것. 그리고, 촛불집회가 중반기에 이르러 집회가 대규모화 되면서 참여한 예비군의 수 역시 많아졌고, [[6월]]이 가까워질 무렵에는 촛불집회 내에서 상당한 수를 갖춘 집단으로써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이들을 한데 묶어 촛불예비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 대략 이 무렵부터이다. 이러한 인식이 생긴 이후, 이전까지 각 개인단위로 참여했던 예비군들 사이에서 일정한 동질감이 형성되었고, 이에 따라 촛불예비군이라는 이름으로 집회 내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공통점이 있을 뿐인 불특정 다수였던 이들이 정말로 조직화에 가까운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 이 경우 예비역 청년이라는 특성을 살려 집회의 질서 유지나 경찰과의 충돌 방지, 행진의 대열 유지, 몸싸움 등 근력과 체력이 필요한 영역에 앞장서려는 경향이 강했으며, 집회의 규모가 가장 컸던 6월부터 이러한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실제 역사상으로 봐도 한 집단의 기강을 잡을 때는 복식, 즉 유니폼을 정비하는 사례가 많았다. [[국사]]시간에 '왕권을 강화하였다.'라는 수식어가 붙는 왕들의 대부분의 업적에서 '율령반포', '복식정비' 등이 붙는 것도 그러한 이유. 즉 어느 집단이 동질성을 가진 복식을 착용함으로서 연대의식을 높이고 집단소속감 고양 및 행동양식의 수정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이들 역시 예비군들로서 입고 나온 예비군복이라는 복식에 의해 연대감이 형성된 것이다. 의도된 바가 아니라 [[우연]]이긴 했지만. 게다가 예비군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 [[20대]], 즉 한창 나이대인 [[청년]]들이었기 때문에 혈기왕성한 체력과 활동력을 가진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후, 이들의 활동은 촛불집회의 진행과 함께 계속되었으나, [[7월]]에서 [[8월]]에 이르러 집회가 하강국면에 이르면서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