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다빈 (문단 편집) == 평가 == '''포스트 [[김연아]] 세대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김연아 이후 최초로 [[피겨 스케이팅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주니어 그랑프리]] 2개 대회 연속 메달,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대회|세계선수권]] 10위[* 이에 따라 동시에 자력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피겨 스케이팅|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출전권 2장을 확보했다.][* 혼자 출전한 경기라 2장을 확보하려면 10위 안에 무조건 들었어야 했고, 특히나 동계올림픽이 중요했던 이유는 [[김연아]]를 배출한 나라에서 열리는 첫 동계올림픽이었기 때문이다.]및 [[2018 평창 동계올림픽]] 7위에 입상하는 등 김연아 이후 다양한 최초 기록을 수립한 선수이다.[* 최다빈을 두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나이 제한으로 인해 출전할 수 없었던 이른바 '트로이카 세대'([[김예림]], [[유영(피겨 스케이팅)|유영]], [[임은수]])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하는 시각도 있으나, 이들 이전에 이미 동계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 다양한 권위있는 세계대회에서 이들에 뒤지지 않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최다빈을 단순히 징검다리 역할로만 한정하는 것은 저평가로 비칠 수 있다. 또 최다빈 역시 소위 '김연아 키즈' 중 한 명이기도 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최다빈 트럿트토.gif|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최다빈 더악트토.gif|width=100%]]}}} || || 3Lz+3T[* 당시 GOE(수행점수) 1.12를 받았으나, 비공인 대회이다.] || 2A+3T[* 당시 GOE(수행점수) 0.80] || [[김연아]] 키즈 중 [[박소연(피겨 스케이팅)|박소연]]과 함께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점프를 도약할 때 엣지가 명확한 편이었으며 성공률은 동시대 국내선수 중 가장 높았다. 특히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3Lz+3T),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룹(3F+3T), 더블 악셀+트리플 토룹(2A+3T) 등의 고난도 기술의 성공률이 매우 높아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견고한 모습으로 국내 피겨팬들에게 '''컨시퀸'''[* 지금도 이 별명은 최다빈의 것으로 굳혀져있다.]이라고도 불렸으며, 전성기 시절에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넘어지거나 팝을 한 경기가 거의 없고 콤비네이션 점프를 놓친 적 역시 없다.[* 초반에 놓칠 시 후반 플랜 B로 100% 성공시켰다.] 스핀 수행 등 비점프 요소도 레벨 충족 요건을 놓치지 않는 안정적인 모습으로 당시 국내 선수들 중 기술적으로는 최상위권이었다. 잘못된 습관을 단시간에 고쳤다. 신혜숙 코치 시절 아웃 엣지로 도약해야 하는 러츠를 인엣지로 도약하는 플러츠로 수행했었고, 플립 점프는 인엣지로 도약하기는 했지만 미관상 좋지 않은 하이킥 점프였다. 하지만 지현정 코치에게로 옮겨간 후 점프 교정을 시작하더니, 단숨에 점프 습관을 고쳐왔다. 시니어 2년차 때 표현력과 스케이팅 스킬 향상을 위하여 미국 코치에게 배우다가 이은희 코치에게로 옮겨간 후 전반적인 프로그램 구성 점수뿐만 아니라 비점프 요소들이 보다 좋게 향상되었다. 다만 경기 시 무표정함과 예술성 부족이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받았다. 선수 본인도 이를 인지하고 점차 경기에서 밝게 웃는 등 표정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http://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2725981|2015년 인터뷰]]에서도 예술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가 있다. 큰 대회들에서 강심장 면모를 보였다. 그 예로 [[2016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대회|2016 세계선수권]] 프리 스케이팅 경기에서 초반 3Lz+3T에 실패하자, 후반 3연속 컴비네이션 점프 때 3-2-2로 예정되어 있던 점프를 3-3-2로 수행하였다. 이러한 플랜 B는 이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인전 프리 스케이팅 경기 때에도 발동되어 멋지게 성공시켰다. 그 결과 올림픽 7위, 세계선수권 10위, 사대륙선수권 4위, 아시안 게임 금메달의 커리어를 남겼다. 부츠 문제로 겪은 슬럼프[* 선수가 어릴때부터 신어온 부츠는 에스피테리라는 브랜드의 부츠였는데, 아예 단종되어 버리면서 타 브랜드 부츠에 적응하는 것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이과정에서 부상까지 겹쳤다.]를 극복한 뒤, 한국 피겨계를 둘러싼 여전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오랜 기간 현역 선수생활을 이어가면서 후배 스케이터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기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