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치바현 (문단 편집) == 역사 == [[율령국]]인 가즈사(上総), 아와(安房), 시모사(下総)의 일부가 합쳐진 현. [[헤이안 시대]]부터 이곳에 터를 잡은 치바씨(千葉氏)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를 지원하여 [[가마쿠라 막부]] 성립에 공헌했기 때문에 주요 다이묘의 권세를 누릴 수 있었으나, 가마쿠라 초기부터 상속 문제로 파벌이 갈라지고 [[무로마치 막부]]가 세워지는 시기가 되면 아예 분열하여 내전까지 일으켰다. [[센코쿠시대]]에는 결국 후호조씨(後北条氏)에게 복속되었다. 그러나 1590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호조씨가 복속됨에 따라 보소 반도의 대부분은 그 휘하에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가 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막부가 있던 에도와 가까워 별 탈 없이 지냈다. [[대정봉환]] 후 [[보신 전쟁]]으로 에도성이 무혈개성되자 이 지역은 북부의 후나바시(船橋)에서의 전투를 제외하면 별다른 저항 없이 메이지 신정부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1871년에 시행된 [[폐번치현]]으로 니하리현(新治県), 기사라즈현(木更津県), 인바현(印旛県)이 생겨났으며, 1873년에 기사라즈현과 인바현이 통합하여 치바현이 탄생했다. 1875년에는 니하리현의 남부 지역을 편입하면서 지금과 비슷한 경계가 완성되었다. [[태평양 전쟁]]기에는 농공업 혼합지대로 개편되었으며, 1944년에 [[일본 본토 공습]]이 시작되자 도쿄로 향하는 [[B-29]] 폭격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다만 치바현은 공습을 거의 받지 않았다. 어차피 조금만 더 가면 도쿄라… 전쟁 말기에는 미군의 상륙에 대비하여 본토결전을 하겠다고 주민들을 모아 국민의용군 방위대를 조직했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지상전까지 가지는 않았다. 1950년대 들어서는 [[베드타운]]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뉴타운[* 그러나 치바현의 경우 무분별한 택지개발과 버블경제 이후 파산으로 인해 전국에서 한계뉴타운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으로 유명하다.]과 유원지가 여럿 생겨났다. 1978년에는 [[나리타 국제공항]]이 개장하여 일본의 관문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