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타리파 (문단 편집) === 알비 십자군 === 1209년, 카타리파 및 카타리파를 비호하는 영주들을 모두 공격하기 위하여 [[십자군]]이 편성되었다. 이것이 알비 십자군이다. 이 십자군의 결성된 배경에는 프랑스 남부를 완전히 왕권 아래에 두고 싶어했던 당시 프랑스 왕 [[필리프 2세]]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는데, 이러한 프랑스 왕의 의도가 카타리파(알비파)의 확대에 고민하던 [[교황청]]의 의도와 일치하였다. 다만 당시 필리프 2세는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와 그의 뒤를 이은 [[존 왕]]과 한참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카타리파 정벌에 협조할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직접 십자군에 참여하는 대신 십자군이 북프랑스를 통과할 때 약간의 도움을 주는 정도에 그쳤다. 카타리파 정벌에 적극 나선 것은 필리프 2세 다음으로 프랑스왕에 즉위한 그의 아들 [[루이 8세]]였다. [[파일:Cathars_expelled.jpg|width=400]] * 카르카손 요새에서 추방당하는 카타리파 신도들(프랑스 대연대기(Grandes Chroniques de France)의 1209년도 삽화) 알비 십자군은 비교적 순조롭게 성과를 거뒀다. 남프랑스의 영지와 도시는 차례차례 점령되었고, 카타리파는 각지에서 학살, 처형되었다. 1209년 말에는 난공불락의 요새 [[카르카손]]까지 함락된다. 일시적으로 툴루즈 백작 레몽 6세가 세력을 회복하기도 했으나, 레몽 6세는 아들 레몽 7세와 함께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점령군의 폭정 때문에 민심이 악화되자 다시 영국에서 돌아와 툴루즈를 회복하고 세력을 확대하기도 했지만 레몽 6세가 죽은 뒤 레몽 7세 시기에 완전히 패배하였다. 1228년, 툴루즈가 완전히 함락되고 레몽 7세가 프랑스 왕 [[루이 9세]]에게 항복하면서 십자군 전쟁은 종결되었다. 툴루즈 백작령의 항복으로 카타리파를 비호하는 세속 영주들은 완전히 사라졌고, 1229년부터 카타리파에 대한 종교재판이 실시되었다. 붙잡힌 카타리파 지도자들은 종교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영주에게 인도되어 처형되었다. 마지막 남은 카타리파의 거점은 산악 지역에 있는 몽세귀르(Montségur)의 [[산성]] 요새였다. 카타리파는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마지막 저항을 계속했다. 1244년 3월 16일, 십자군은 [[바스크]] 산악지대 출신의 병사들을 고용하여 요새를 함락시켰고, 농성하던 카타리파 신도 2백 명 이상은 [[화형]]에 처해졌다.[* 다만 이때는 베지에 함락과는 다르게 개종을 한 사람들은 무사히 성을 떠날 수 있게 해주었다. 화형을 당한 이 200명은 그러한 관대한 조건에도 자신들의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불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어 죽어갔다.] 1321년에 마지막 완덕자(Perfecti) 기욤 베리파스토가 붙잡혀 처형되었다. 1330년 이후 이단심문소의 자료에서 카타리파의 이름은 사라졌다. 한편 십자군이 알비파의 거점인 베지에(Béziers)를 점령할 당시, 어느 병사가 알비파를 어떻게 구분하는지를 질문하자 현장에 있던 교황 특사인 아르노 아모리(Arnaud Amalric)가 남긴 말이 매우 유명하다. >'''Caedite eos. Novit enim Dominus qui sunt eius.'''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 |Kill them all and let God sort them out.]]''' >'''전부 죽여라. 판단은 신께 맡겨라.''' 번역에 따라 '모두 죽여라. 주님께서는 누가 당신의 백성인지 아신다, 주님께서 가려내실 것이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 발언은 알비 십자군을 비롯한 당시의 종교적 광기를 비판할 때 자주 인용된다. 다만 실제로 그가 이런 말을 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1303년 알비파의 근거지였던 남프랑스 지역을 방문한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가 현지 주민들의 프랑스 왕실과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한 높은 증오심을 직접 겪고 크게 놀랐을 만큼 알비파의 영향력은 남아 있었다. 그래서 1308년부터 1323년까지 로마 교황 [[클레멘트 5세]]가 [[종교 재판관]]들을 남프랑스 지역으로 보내 남아있는 알비파 잔당들을 뿌리뽑아야 했고, 1350년이 지나서야 알비파가 비로소 완전히 사라졌다[* 출처: 신의전쟁/ 도현신 지음/ 이다북스/ 195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