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칭 (문단 편집) == 역사 == 원래는 허허벌판의 정글이었고, 현지에서 흔히 '무아라'라고 하는 강 하류가 끼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이반족]]이나 [[다약]] 같은 해상 원주민들이었고 그냥 고기잡이나 하고 다녔다. 1827년 이곳을 지배하고 있던 [[브루나이 술탄국]]에 의해 발견된 뒤 조그만 타운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가, 1839년 [[영국인]] [[제임스 브룩]]이 이곳에 도착하였고 1841년 브룩이 세운 [[사라왁 왕국]]의 수도가 되면서 규모가 제법 있는 도시로 성장한다. 참고로 '쿠칭'이라는 이름은 브룩이 발견하던 당시 이미 사용 중이었다. 사상 유례없는 아시아의 백인 왕조의 중심도시로서 전성기를 이루었으나, 1942년 [[일본 제국|일제]]가 [[일제강점기|침략]]하면서 위기를 맞이했다. 1945년 일제의 패망 이후 백인왕조는 다시 이 지역을 수복했으나, 당시 한마디로 '''썰렁했다.''' 1946년 영국은 [[사라왁 왕령식민지]]를 설치했는데 쿠칭은 이곳의 수도로 남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민들의 독립열기가 고조되고, 1963년 독립인사들의 결정으로 [[말레이시아]]에 --잠정-- 편입이 결정된 후 7월 22일 독립에 이어 9월 16일 말레이시아로 편입, [[동말레이시아]]의 최대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쿠칭은 쇠퇴하기 시작하는데, 연방정부의 차별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공산주의자 척결'을 명목으로 개발을 저해한 결과 생각처럼 그리 번영한 곳은 아닌 꼴이 되었다. 동말레이시아 최대도시 지위도 [[코타키나발루]]로 넘어가고. 1988년 8월 1일 특별시로 승격되었으며 동말레이시아 최초의 특별시가 되었다. 2015년 7월 29일 '[[하나의 말레이시아]]' 정신에 의거하여 "단결의 도시"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현재 사라왁의 수도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지만, 이전부터 [[미리(도시)|미리]]로 수도를 옮기자는 떡밥이 계속 나돌고 있다. 쿠칭은 성립 초기에는 그래도 사라왁 중앙에 가까웠지만, 브룩을 중심으로 점차 영역이 북동쪽으로 쭉 뻗어진 결과 지나치게 서남쪽의 한구석에 쳐박히게 된 것. 그래도 북동쪽은 [[브루나이]] 덕분에 빈곤한 꼴은 간신히 면하고 있으나, 그쪽으로 행정력이 쉽게 닿지 못하는 문제점 등이 여러모로 발생하자 그나마 국토 중앙에 더 가까운 미리로 옮기려는 걸로 보인다.[* 근데 이것도 정확히는 미리가 제2의 도시다 보니 중앙에 가까운 규모 있는 특별시는 미리뿐이라 그런 것 같다. 오히려 [[빈툴루]]가 좀 더 중앙에 더 가깝다.] 하지만 수도 천도 자체가 매우 민감한 사안이고 지금도 논의 중일 뿐이며 지금은 아무런 말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