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탈리도마이드 (문단 편집) == 개요 == [[파일:thalidomide.png|bgcolor=white]] 공식 화학명은(RS)-2-(2,6-dioxopiperidin-3-yl)-1H-isoindole-1,3(2H)-dione. [[샌즈]]에서 개발되었다. 최초 제약회사는 그뤼넨탈(Grünenthal GmbH).[* 1998년 FDA의 판매승인을 받은 제약회사는 미국의 세엘진. 트리돌의 주성분인 트라마돌을 개발한 회사이기도 하다.] 1957년 10월에 [[서독]]에서 '''콘테르간'''(Contergan)이라는 제품명으로 [[의사]]의 처방 없이도 구입할 수 있는 진정제, 수면제로 시판되었다. 광고할 때 '무독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특히 [[입덧]]을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어 많은 임신부들이 사용하였으나, 이 약을 복용한 산모에게서 사지가 없거나 짧은 신생아들이 태어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렇게 기형아로 태어난 아이들을 콘티키즈(콘테르간 키즈) 혹은 탈리도마이드 베이비(Thalidomide Baby)라고 한다.[* 그들의 불편에 대해서는 탈리도마이드 베이비인 독일의 성악가 토마스 크바스토프의 자서전 《빅맨 빅보이스》에 잘 나와 있으니 참고.] 이 아이들은 신체적 기형 뿐만 아니라 생존율도 낮았고, 그나마 살아 남아 성인이 된 아이들도 한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했다. 1961년 11월 독일에서 그리고 1962년 5월에야 [[일본]][* [[메스암페타민|히로뽕]]으로 유명한 대일본제약에서 '이소민'과 '프로판M'이란 제품명으로 판매했었다.]에서 판매가 금지되기까지 거의 5년간 사용되었다. 그 때문에 [[유럽]]에서만 8천명, 전세계 48개국에서 1만 2천여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일명 '''콘테르간 스캔들'''(Contergan-Skandal)로 현대의학 역사상 최악의 약해(藥害)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미국]]에서는 단 17건의 영아 부작용 사례만 보고되었는데, 이는 [[식약청(미국)|FDA]]에서 끝까지 판매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심사관(reviewer)이었던 프랜시스 올덤 켈시(Frances Oldham Kelsey, 1914-2015)가 "서류 미비, 자체 실험자료 미비,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 검토의 불충분" 등을 발견하고 제약회사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테스트를 할 것을 요구하며 6번에 달하는 승인요구를 모두 거부했다. 덕분에 미국에서의 탈리도마이드 부작용 사건은 극히 적었고, 프랜시스는 이 공로로 전국민적인 영웅이 된 것은 물론 대통령 [[존 F. 케네디]]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2010년]]엔 FDA에서 그녀의 이름을 딴 켈시 상까지 만들었다. 한편, 당시 [[대한민국]]은 경제적, 사회적 여건상 시판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2081600329203006&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62-08-16&officeId=00032&pageNo=3&printNo=5168&publishType=00020|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기사 맨 하단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