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봉 (문단 편집) == 개요 == 태봉은 [[후삼국시대]]의 삼국 가운데 [[한반도]] 중, 북부에 위치한 [[군주정]] 국가로, [[궁예]]에 의해 창건되었다. 대중적으로 '''후고구려'''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 왕조의 유일한 군주인 궁예는 국호와 연호[* 무태, 성책, 수덕만세, 정개 ]를 자주 바꿨는데, [[901]]년에 [[고구려]]를 부흥한다면서 고려(高麗)라는 이름으로 건국한 후 [[904]]년에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바꾸었고, 7년 뒤인 911년엔 또 태봉(泰封)으로 바꿨다. 그러나 [[918]]년 [[왕건]]이 [[역성혁명]]으로 궁예를 실각시키면서 태봉을 [[멸망]]시키고 [[고려]]를 건국한다. [[899년]] 궁예가 한 때 자신의 주군이자 한반도 중부 군벌인 [[양길]]을 [[비뇌성 전투]]에서 제압하고 사실상의 국가를 세웠고 왕칭한 정식 건국 년도는 901년이었으나, 실제로는 [[894년]]에 양길 밑을 떠났을 때 이미 독자적인 패거리가 있는 상태였고, 양길 허락도 없이 독자적인 관부를 열고 관직을 임명해가던 때는 [[896년]]이었다. 즉 궁예 집단 자체가 실질적인 국가가 된 상태는 896년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후 국호에 몇 차례 변동이 있었으며, 첫 수도인 송악(개성)은 물론이고 지배층의 세력과 국가 조직이 이후의 왕씨의 고려 왕조로 완전히 계승된다. 궁예가 왕건을 필두로 하는 패서 호족들의 지지에 힘입어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태봉의 강역은 역사적으로 [[경기도]], [[황해도]], [[강원도]]를 모두 차지한 건 물론 나머지 [[평안도]][* [[평양시]] 등의 평남 남부 일대], [[함경도]][* [[함경남도]] [[영흥군]] 이남 지역], [[경상도]][* [[상주시]]를 비롯한 [[경상북도]] 북서부 일부], [[충청도]][* 오늘날의 [[청주시]] 약 1/3, [[충주시]], [[천안시]], [[홍성군]] 등을 포함한 북부 지역(옛 [[목지국]] 일대)], [[전라도]][* [[나주시]]를 중심으로 한 [[영산강]] 하구의 [[월경지]](옛 [[침미다례]] 일대)] 등등 전국 [[팔도]] 모든 지방에 적어도 조금은 영토를 걸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선 시대 행정구역만 기준으로 잡은 이해는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할 때 처음 꺼낼 수 있을 뿐, 실상과는 대단히 거리가 멀다. 실제로 태봉이 차지한 영역 중 쓸만한 지역은 경기도와 강원도 영동 지역 정도에 불과했다. 당시의 황해도는 그 잠재성이야 이미 고구려 시대 때 이미 입증된 바 있지만 고구려 멸망 이후 아직 그때의 성세는 되찾지 못하고 있었으며, 평안도는 고구려 멸망 이후 황폐화되어 유민, 도적, 기타 군소 세력들이 뒤엉켜있던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였다. [[후백제]]가 나주를 비롯한 옛 침미다례 일대와 천안을 비롯한 옛 목지국 일대를 제외한 나머지 삼남 지방을 대부분 석권하다시피 했다는 걸 고려하면 적어도 후백제와의 초반 판세는 백중세에서 약간 우위 정도에 그친다고 봐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