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터키군 (문단 편집) === 쿠데타 === 터키군은 케말 아타튀르크 대통령의 세속주의 수호자 노릇을 했으며 정부가 종교적으로 문제있다고 생각되면 바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시켰다. 이렇게 터키군이 세속주의에 집착하는 이유는 오스만 시절 이슬람교에 경도되었다가 나라가 근대화에 뒤져서 유럽과 러시아한테 얻어맞고 살다가 망했던 쓰라린 경험 때문이다. 터키 군부는 쿠데타 이후 세속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넘긴 후 복귀한다. [[1960년]], [[1971년]], [[1980년]], [[1983년]]에는 직접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했고, 1997~1998년에는 군부가 경고만 먹고 물러섰으나 해외에선 이것도 쿠데타급의 준쿠데타로 규정하고 있다. 2003년 에르도안 집권 이후에도 2007년에 정의개발당 소속이자 당시 외교부 장관이던 압둘라 귈이 대통령으로 당선 될 상황에 처하자, 터키군은 터키군 홈페이지에서 인터넷으로 압둘라 귈 대통령에게 경고하는 글을 올리면서 경고했다. 쿠데타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으로 당시 터키군 참모총장이던 야사르 뷰우카느트는 에르도안 총리와 두시간동안 면담을 해야했다. 터키군의 쿠데타를 이슬람 근본주의 탓만 할 수도 없는게 군부역시 순수한 의도로만 쿠데타를 했다고 보기만은 어렵다. 민간정부가 자신들의 세력을 억누르려고 하기에 뒤엎는 다른나라 막장 군부들이나 하는 짓과 비슷한 짓도 많이 했다. [[1960년]] 쿠데타로 축출시키고 기어코 교수형까지 시킨 아드난 멘델레스 총리가 반군부 움직임을 보였다가 당한 좋은 예이다. 결국 80년대 와서 멘델레스는 복권되었다. 또한 1980년 [[케난 에브렌]](Kenan Evren) 장군의 쿠데타 당시에 형식적으로 극좌, 극우정당 둘을 강제해산하는 조치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세속주의 수호를 변명삼아 수많은 자유주의자들과 군부비난자들을 체포해 고문 및 구금하기도 했다. 터키의 작가인 아지즈 네신도 이 당시에 군부에게 밉보여서 유배되기도 했다. 오르한 파묵 역시 "다른 색들"이라는 책을 통해서 터키군의 쿠데타로 인해서 사람들이 잡혀가고 좋지 않았다고 회상했다.그만큼 터키에서 군부 집중권력은 심각했으며, 여러 기업 및 경제적 특권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터키를 군부 국가라고 유럽 나라들이 호되게 비판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곳도 민간정부의 입김이 세지는 편이며 [[2010년]] 이슬람계 정당인 [[정의개발당]][* 야당을 "꾸란으로부터 멀어져가고있다"고 묘사하는 등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정당이다. 그러나 다른 보수적인 이슬람 율법국가들 수준은 아니다.] 출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ip Erdoğan)[* '모스크는 나의 요새'라는 시를 대중앞에서 낭독했다가 종교·인종혐오를 부추겼다고 4개월동안 복역한 전력이 있다. 여러가지로 기민당처럼 종교와 무관한 정파라고 보기만은 어렵다.] 총리는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정치군인들을 강제예편했는데 군부는 꼼짝도 못했다. 심지어 군부에서 육군사령관 후임을 정해서 올렸는데 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해서 반려된적도 있다. 결국 정부의 의중에 부합하는 사람이 후임 사령관이 되었고 미국대사는 이례적으로 터키 정부의 군부인사를 지지한다는 공개 발언을 하였다. 20세기 후반의 상황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 2011년 현지 신문에 실렸는데, 연 2회 개최되는 정부와 군부의 협의회시 2010년까지는 총리와 참모총장이 같이 상석에 착석했으나 2011년부터는 총리만이 상석에 앉은 사진을 대조하여 1면에 실음으로써, 터키의 문민통제로의 변화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군부는 이슬람교의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집권여당 정의개발당에 반해 세속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터키인들도 케난 에브렌 시절의 군부의 병크에 대해서는 혀를 내두를 만큼 당시 군부가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했던 탓이 크다. 언론에서는 군부가 여론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정의개발당의 약 10년에 걸친 장기집권이 민간정부 우위가 강화되고 있는 한 원인으로 보인다. 정의개발당은 2001년 창당, 2002년 단독집권 이래 꾸준히 50~60% 정도의 높은 지지율을 확보하며 3선째 집권하고 있는지라 아무리 터키 군부가 막강해도 함부로 날려버리기엔 눈치보인다. 또한 정의개발당의 전신인 복지당이 정권을 잡았다가 군부를 위시한 세속주의 세력이 헌법재판소를 통해 정당해산을 시킨적이 있어서 정의개발당도 군부를 위축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있다. 사실상 군부의 입장이 정책에 반영되어 내각으로 전해지는 기구였던 국가안보위원회[* 대통령, 총리, 총사령관, 법무·국방·내무·외무장관 및 육·해·공·치안군 사령관이 참여하는 기구.]를 개편하여 장성급이 맡던 사무총장을 민간인으로 바꾸고 또한 다른 정부기관으로부터 정보를 요청할 수 없도록 했다. 또한 2008년부터는 '에르게네콘(Ergenekon)'[* 터키인들의 선조들이 도피했다는 중앙아시아의 전설상의 계곡 이름. 터키인들의 조상들이 이를 근거지로 세력을 길렀다고 한다.]이라는 반정부 쿠데타 모의 단체에 대한 존재 의혹 및 수사가 가열화되면서 터키군 수뇌부가 크게 흔들리고있다. 이 사건은 2007년 이스탄불의 한 주택에서 수류탄 27발이 발견된데서 시작되었는데, 수사결과 검찰은 정의개발당 집권체제를 전복시키려는 군부 및 친 군부 기득권층들로 이루어진 에르게네콘이라는 반정부 단체의 존재가 확인되었다고 발표했다. 터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에르게네콘'이라는 단체가 이슬람사원을 폭파하고 그리스 공군이 터키 전투기를 격추한 것처럼 위장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혼란과 소요를 일으켜서 정의개발당 정권을 위기에 무능한 정권으로 보이도록 한 뒤, 전복시키려 했다고한다. 이 쿠데타 계획은 이른바 '대형해머작전'이라하며, 쿠데타계획이 담긴 문서가 실제로 확인되었다는 것이 검찰 측의 주장. 반면 피고 중 한명인 체틴 도안 전 육군 1군 사령관 등은 보도된 문서는 정기 세미나에서 논의한 가상전쟁시나리오라고 쿠데타 기도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후 검찰 측에선 수많은 전현직 군장성과 친 군부, 혹은 야당 성향 언론인 등을 에르게네콘에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때렸다. 2011년 당시 현역 군장성 365명 중 66명이 쿠데타 모의 혐의로 수감 중.(…) 전직 합참의장 등 전현직 4성장군들도 예외없이 기소되고 심지어 체포되는 등, 정부측이 매우 강경하게 대응하였다. 아무래도 국가 전가전복 혐의가 걸려있다보니 걸려있는 형량도 하나같이 세다. 2013년 3월 19일에 있던 에르게네콘 사건 13차 공판에서 검사측은 주요 연루자 64명은 무려 [[종신형]]을, 나머지 96명도 최고 15년형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군부 및 세속주의 야당 일파에선 되려 정의개발당이 세속주의 일파에 정치적 보복을 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2008년 3월 14일, 세속주의 성향의 알츤카야 부장판사가 헌법재판소에 여당인 정의개발당이 터키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 원칙을 어기고 있으므로 당을 해산하라고 헌법소원을 낸적이 있는데, 결국 헌재는 이 소원을 기각시켰지만 동시에 정의개발당에 들어가는 정당 국고보조금을 반으로 삭감시켰다. 그러니까 군부를 비롯한 세속주의 일파에선 에르게네콘 사건이 2008년 헌법소원 사태에 대한 일종의 사법 보복이라는 것. 그리고 보복이고 뭐고를 떠나 근 10년을 집권한 정의개발당이 아예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개헌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어 에르게네콘 사건은 정의개발당의 권력 독점을 위한 반대파 숙청 및 개헌 정국을 만들기 위한 포퓰리즘으로 보이는 상황이 되었다. 아무리 정의개발당이 지지율이 높다 하나, 아직 단독 개헌을 이뤄낼 만큼 의석이 충분하진 않기 때문에 지지율 몰이를 할 건수가 필요하다는 것. 그래도 상기에서 언급했듯 터키 현지에선 대체로 일단 터키 군부를 좋게보진 않는지라(...) 정부에 대해 그리 큰 불만은 없는 듯 싶지만, 점점 늘어가는 공공장소 히잡 착용 여성이나 이슬람 교육 및 친이슬람 정책 등 종교화가 가속화되는 상황과 대통령제로 이행할 것을 주장하며 언론, 인터넷을 탄압하는 등 권력집중을 강화하고 있는 정의개발당과 에르도안 총리에게 점점 우려를 보내는 시선이 적지않다. 게다가 정의개발당은 에르도안 총리의 측근들이 부패 수사에 휘말리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또한 총리와 아들이 현금 10억달러 은닉 방법을 상의하는 내용의 녹취파일이 공개된 것이 결정타가 되었다. 결국 2013년부터 뒤늦게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의 영향을 받아 터키 국내에서도 정의개발당 정부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격렬한 반대시위가 발생했다. 다만 이 역시 터키군부 및 구 기득권층에 대한 지지와는 거리가 먼 상황.[* 참고삼아 터키의 정치상황을 부가적으로 설명하자면, 2014년 3월경 이뤄진 지방선거에서 앞선 엄청난 스캔들과 논란, 반정부 감정에도 불구하고 정의개발당은 45.6%의 전국 득표율을 기록해 세속주의 정당인 제1야당 공화인민당의 득표율 27.9%를 크게 앞섰다. 수도 앙카라를 포함 81개 주 광역지자체장 자리 중 50개 주에서 승리했다. 이렇게 정의개발당에 대한 반정부시위가 흐지부지되는...가 했더니 2014년 5월경 발생한 소마광산 폭발사고에서 정의개발당 정부의 사고대처에 있어서의 무능력함과 각종 망언 등으로 반정부시위에 다시 불이 붙었다.] [[유럽 연합]]도 지금까지는 터키 군부의 정치개입에 대해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며 반대해왔으므로 에르게네콘 사건 수사에 대해 반민주주의 성향의 지하조직을 소탕하여 문민지배를 확립하는 계기로 평가하며 환영했다. 그러나 검거대상이 군부에서 정부를 비판해오던 언론인이나 지식인들에게로 확대되자 정의개발당의 권위주의 통치를 공고히 하려는 수사가 아닌가 하는 터키 국내외의 의구심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 2013년 8월 5일 에르게네콘 선고 공판에선 일케르 바시부 전 터키군 총사령부 사령관까지 구속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그 외에도 퇴역장성 5명, 퇴역 대령 2명 등 17명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퇴역장성 및 언론인, 변호사, 대학총장 등 275명에게 중형을 판결했다. 판결을 앞두고 터키 정부에선 법원일대를 전면봉쇄했지만 이스탄불과 앙카라 등지에서 대대적인 세속주의, 군부 지지 시위가 일어나서 경찰과 충돌했다고 한다. 2013년 10월 9일 항소심에서 총 275명에 달하는 피고들 중 237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체틴 도안 전 육군 1군사령관, 하밀 이브라힘 프르트나 전 공군사령관, 외즈덴 외르넥 전 해군사령관, 퇴역 장성 출신인 에르긴 알란 민족주의행동당 의원 등의 군부 주요인사들이 18~20년형을 받았다. 36명은 무죄를 선고받았고 88명은 증거부족 등을 이유로 항소심에서 1심판결을 파기했다. 2013년 12월 정의개발당 에르도안 총리 측근들에 대한 비리수사가 시작되고 총리의 측근이 한 언론에 '비리 수사는 쿠데타를 유발하려는 음모'라고 기고하자(...) 터키군은 홈페이지에 직접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성명서를 개재했다. 2014년 3월 7일 일케르 바시부 전 터키군 총사령관이 석방되었다. 헌법재판소는 바시부 전 총사령관의 변호인측이 제기한 '불법적으로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지방법원이 바시부 전 총사령관의 주장을 실질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기각했으며 종신형을 선고한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석방 이유를 밝혔다. 에르게네콘 사건 자체가 증거없이 조작된 사건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는 결정이 터키 헌재에서 나온 것. 그러나 정의개발당은 결국 2010년에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뤄냈고, 2014년 8월 10일 치러진 첫 대통령 직선제 선거에서 총리 에르도안이 대통령으로 뽑혀 절대권력을 유지하면서, 문민통제라는 미명 하에 정의개발당 정권에 목줄이 잡힌 터키군의 상황 자체는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에르도안이 2015년 선거에서 패배, 조금 숨통이 트인듯 하다. 그리고 그동안 눈엣가시였던 [[ISIL]]이 마침내 터키에서 테러를 일으키자 [[사망 플래그|공식적으로 이들을 조져버리겠다는 선포를 하였다.]] 그러나 터키가 [[ISIL]]에게서 원유를 구매하는 등 IS에게 우호적이고 잘싸우고 있는 [[페쉬메르가]]의 독립을 막으려는 행동이 관측되고 있다. 그동안 터키군이 쿠데타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예측이 강했지만, 2016년 7월 15일 드디어 군부는 에르도안을 몰아내기 위해 [[터키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는 재빠르게 터키 TRT와 CNN TURK, 정의개발당 당사, 보스포러스 해협, 광장, 기타 주요 장소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고 터키군 참모총장을 구금하고 성명까지 냈다. 에르도안은 국민들이 거리로 나오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면서 국민들의 힘으로 결국 살아남는데 성공하였다. 쿠데타군은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항복하였고 앙카라와 카르스 마르마스 등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실패하였다. 앙카라에서 소수의 저항이 있었지만 결국 진압되었다. 이번 계기로 터키군은 숙청되었고 알레비와 세속주의 장교들은 해임되거나 감옥에 갔다. 에르도안은 귈렌파의 저항이라고 하지만 속내는 세속주의자와 귈렌파 숙청에 있다. 쿠데타 실패로 터키군은 이번 계기로 문민통제에 들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크다. 그러나 터키군의 98%는 쿠데타에 동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쿠데타가 실패할수밖에 없었고 사실 쿠데타 숙청이 과한 측면이 있어 반발이 일어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 특히 쿠데타 숙청을 빌미로 에르도안 정부의 인권, 언론 탄압이 심해지고 있다. 2016년부터 [[PKK]]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PKK의 저항이 워낙 거세다보니 터키군도 사상자가 적지않게 나오고 있다. 특히 터키 측은 군인과 경찰,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가 1200명을 넘어선 상황이다. 무엇보다 [[숙청]]의 여파로 터키군은 공군의 조종사 부족이 심각해졌으며 주력 전투기인 [[F-16]] 조종사를 육성할 교관이 '''전무하다고 한다.''' 미국에 교관 4명을 요청했으나 미국이 거절했고 파키스탄 측으로부터 교관 3명을 구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미국의 방해로 어려운 실정이다. 거기다가 1350명의 공군 조종사 중 680명이나 제거된 상황이라[* 모두 투옥되거나 해외로 도주했다.] 복구가 어려운 상황이다.[[https://www.thenews.com.pk/print/227054-US-bars-Turkey-from-using-Pak-pilots-for-F-16s-training|#]],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8/31/0200000000AKR20170831194300108.HTML?input=1195m|#]][* 물론 터키 공군이 쿠데타의 주축을 이루기도 했고 엄연히 '''민간인에게 폭격을 가한''' 책임은 지우기 어렵다. 하지만 아무 대책도 없이 권력 강화와 군부 견제를 위해 무더기로 숙청한 [[에르도안]]의 책임이 크다.] 그래서 터키 정부는 대책으로 민간 항공기 조종사들한테 재입대할 것을 명령했다. ([[http://www.hankookilbo.com/v/e8fba04cce26460283f86fef64f5b449|링크]]) 문제는 이게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는데다 터키 공군은 민간 항공사들에 비해 급여가 낮고 처우가 열악하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