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텍사스 (문단 편집) == 역사 == ||<#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fortunedirk.jpg|width=100%]]}}} || 텍사스 [[주지사]] 일람은 [[역대 미국 주지사#s-3.47|역대 텍사스 주지사]] 문서를 참조할 수 있다. 텍사스는 [[프랑스]], [[스페인]] 등의 역사를 거쳤고 텍사스 개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스티븐 오스틴]]의 주도 아래 [[미국인]]들도 텍사스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첫 이주 때는 300여 가구밖에 되지 않았으나 1830년에는 텍사스 지역의 꾸준한 발전으로 인해 미국인과 함께 노예는 2000명 정도 거주하게 되었다. 곧 텍사스 내에서 [[미국인]]의 수는 [[멕시코인]]의 수를 앞지르게 되었으며 1834년 오스틴은 멕시코 당국에 텍사스 공화국을 멕시코로부터 분리해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당시 멕시코 대통령 [[산타 안나]]는 텍사스를 포함한 멕시코 전체 영토를 포괄하는 헌법을 공포했는데 텍사스의 미국인들은 멕시코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하고 [[텍사스 공화국]] (1836~1845) 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이에 [[산타 안나]] 대통령은 60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중 유명한 일화는 3000여 명 정도의 멕시코군 병력이 진군할 때 텍사스군의 윌리엄 트래비스 대령의 지휘 아래 제임스 부이, [[데이비드 크로켓]]을 비롯한 186명의 병사들이 알라모 미션[* 미션(mission)이란 [[카톨릭]] [[선교]]를 위해 세운 [[성당]]을 중심으로 한 선교 거점을 말한다. 알라모 미션은 스페인 통치시기인 1718년 [[아메리카 원주민]] 선교를 위해 [[샌안토니오]]에 건립되었으며 요새의 용도를 겸했다.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의 담을 등지고 멕시코군과 13일간 저항하다 3월 6일에 전멸하게 된 알라모 전투이다. 이 알라모 전투는 미국에서 정말 유명하기 때문에 알라모란 단어는 '마지막 보루'를 뜻하는 대명사화 되었다. 지금 역시 많은 미국인들이 예를 들어 어떤 힘든 상황에 처해있지만 자신의 모든 의지를 확고하게 하고자 할 때 "This is my Alamo!(여기가 내 알라모다!)"라고 외치곤 한다. || [[파일:Alamo.jpg|width=100%]] || || 알라모 전투 삽화 || 그렇게 텍사스에 거주하고 있던 미국인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1836년 4월 21일 양군은 마침내 [[샌 재신토]]에서 큰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고 텍사스군은 알라모에서 전멸한 이들을 기리며 '알라모를 기억하라' 라는 구호와 함께 [[게릴라]]전투를 벌였다. 전투 끝에 멕시코군은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멕시코군 병력 1360명 중 650명이 전사하고 300명이 포로로 잡혔다.] 텍사스군의 사망자는 9명에 불과했다. 많은 멕시코군 포로가 잡혔으며 그 중에는 대통령 [[산타 안나]]도 있었고 살아남은 멕시코군은 [[리오그란데 강]] 너머로 퇴각했다. 당시 텍사스군 사령관이던 [[샘 휴스턴]][* [[휴스턴]] 도시의 이름이 이 인물로부터 유래되었다.]은 [[산타 안나]]에게 텍사스의 독립을 인정해주면 풀어주겠다고 제안했으며 이에 5월 14일에 체결된 벨라스코 조약[* 1. 산타 안나에 의한 개별적인 무장은 하지 않거나 이 독립전쟁에서 텍사스 공민들에 대한 무장을 제거하도록 한다. 2. 바다, 육지에서 멕시코와 텍사스 간에 적대적 행위를 멈춘다. 3. 멕시코 부대는 텍사스에서 떠나고, 리오그란데 강 남부에 재배치 한다. 4. 멕시코 부대의 철수 중 적절한 보상없이 재산을 징발하는 것을 절제한다. 5. 이 전쟁동안 멕시코에 의해 징발된 모든 자산 (말, 소 등) 과 멕시코군이 소유한 흑인 노예는 반환해야 한다. 6. 양 군은 접촉을 피하고, 다섯 리그 (27.78 km) 의 거리를 두도록 한다. 7. 멕시코군은 즉각 철수한다. 8. 양 사령관이 전령을 파견하여 조약의 내용을 통지한다. 9. 멕시코는 모든 텍사스군의 죄수들을 방면하고 텍사스도 동일한 수와 정도의 죄수들을 방면한다. 10. 산타 안나는 적절한 때 베라크루즈로 이송된다.]으로 인해 [[텍사스 공화국]] (1836~1845) 으로 완전히 독립했고 [[샘 휴스턴]]을 새로운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텍사스 공화국이 독립을 달성하고 나서 텍사스인들의 기쁨도 컸지만 텍사스가 [[미합중국]]과 합병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한 이슈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갑론을박을 거친 기간이 길게 이어졌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통해 텍사스인들의 주에 대한 자부심과 주를 상징하는 깃발에 대한 사랑은 지금까지도 매우 크다. 특히 텍사스 공화국의 역사부터 사용되었던 주 깃발의 의미는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별이라는 뜻에서 텍사스 깃발에 단 하나의 별을 그려 넣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텍사스 공화국의 별명 중 하나는 'Lone Star Republic' 이었다. 미합중국과의 병합을 두고 10년이라는 기간동안 여러 의견이 오고 갔으나 미합중국에 가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지게 되었다. 결국 여러 상황 끝에 1845년 12월 29일 [[텍사스 공화국]]은 미국의 28번째 주로 가입하게 되었다. 19세기 중반이 지나면서 미국은 넓은 영토를 획득하고 [[뉴멕시코]] 준주를 편성했는데 텍사스는 미국이 획득한 영토 중 많은 부분의[* 현재의 [[애리조나]], [[콜로라도]] 그리고 [[와이오밍]] 일부.] 영유권을 놓고 미국 연방 정부 및 뉴멕시코 준주와 회담이 오고 가게 되었다. 이는 1850년 타협에서 해결되었으며 북위 36도 30분[* 미주리 타협과 같은 위도선.] 그리고 서경 103도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현재의 텍사스 영토가 확정되었다. 이렇듯이 텍사스는 다양한 역사를 거치고 독립한 주 (州) 이며 그래서 생겨난 말이 'Six Flags Over Texas'[* 텍사스에 있는 [[식스 플래그|세계 최대 놀이공원]]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