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틀락스칼텍 (문단 편집) === [[누에바에스파냐]]의 자치령 === 아즈텍 정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으로 틀락스칼텍인들은 코르테스로부터 보상과 자유를 보장받았다. 코르테스가 스페인으로 압송된 뒤에도 틀락스칼텍인들은 스페인의 '파트너'로서 스페인 왕실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을 보장받고, 다른 원주민들과는 달리 말을 탈 권리[* [[스페인]] 측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에게 [[말(동물)|말]]을 타지 못하게 규제한 이유는 이들이 기병대를 만들어 군사력을 키울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꽃 전쟁이나 반(反) 스페인 항쟁 등으로 상당한 전투 경험이 풍부한 부족들의 힘을 제한하고자 했다. 이런 규제에도 불구하고 틀락스칼텍인이나 [[아즈텍]]인의 친척뻘 민족인 [[코만치|코만치족]]이 [[스페인인]] 이주민들의 농장에서 말을 훔치거나, 도망쳐나와 야생화된 말을 길들여 [[유목|유목민]]이 된 후에는 [[스페인]] 식민당국 측은 물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멕시코]]인들을 상대로 약탈과 살인을 일삼았다.], 총기를 휴대할 권리, 귀족 신분을 유지할 권리(기존 통치구조를 유지할 권리) 등을 인정받았으며, 스페인 왕가로부터 문장과 권리를 하사받기도 한다. 스페인은 이 약속은 지켜 틀락스칼텍의 특권들은 스페인이 멕시코 독립전쟁에 의해 물러나는 그날까지 유지되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독립한 지금도 이들이 받은 세습작위는 유지되고 있다.] 아즈텍 주변 [[치치멕]]이나 다른 마야계 부족들은 거의 전부가 코르테스와 협력했고 그 공으로 많은 혜택을 받았지만 틀락스칼텍의 특혜에는 못미쳤으며, 심지어 가장 먼저 코르테스 일당과 동맹을 맺고 병력을 제공한 베라크루스 일대의 토토낙인들도 이 정도 대우는 받지 못했다. 스페인이 멕시코 다른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할 때는 군사 지원을 했으며, 오히려 다른 원주민들을 공격하는 데에 가담하고, 심지어 스페인의 지원 하에 치치멕이 지배하던 구역[* 지금의 [[미국]] [[뉴멕시코]], [[애리조나]] 주들. 이들의 상당수는 현지 백인과 결합하여 완전히 백인화하였다.]으로 이민 가서 [[식민지]]를 세우기도 했다.[* 스페인은 이 지역을 개발하여 농경지로 만들고 싶어했는데, 스페인 본토인들은 이 지역의 기후와 맞지 않았고 현지인들은 치치멕 등의 유목민이어서 복속시켜도 노동력으로 활용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정주민족이었던 틀락스칼텍인들을 이 지역으로 이주시켜 농경지로 개간하도록 한 것이다.] 테노치티틀란 함락 때 살아남아 투항한 아즈텍인들도 반란 진압에 동원되었기 때문에 철천지 원수들이 한 깃발 아래 싸우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지역으로 이주한 틀락스칼텍인들은 스페인 식민정부와 협상을 해서 개척지 영구 보유 및 세금과 부역 완전 면제라는 특권을 얻어냈다. 스페인이 잉카 제국 정복 당시 모든 잉카인들을 멸족 직전까지 몰아갔지만([[잉카 제국]] 문서 참고) 여기선 상당히 유화적이었다.[* [[잉카 제국]] 또한 스페인군이 잉카 제국의 착취와 억압에 이를 갈던 [[페루]]와 [[에콰도르]] 등 잉카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던 남미 지역의 피지배 원주민 부족들을 앞세워서 잉카 정복에 나서거나 회유했을 정도였다.] 문화적으로 참견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지만 [[식인]]풍습[* 아즈텍처럼 극한의 인신공양까지는 아니었지만 틀락스칼텍인들도 식인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코르테스는 동맹을 체결한 부족들에게 식인을 엄격히 금지했지만 딱 한번, 테노치티틀란 포위전 때 사기진작을 위해 죽은 아즈텍 전사들을 동맹군 병사들이 가져가 포식하는 걸 허용했다. 정확히는 식인을 허용할 순 없으니 묵인한 것에 가깝다.] 만큼은 바로 잡았다. 하느님의 피와 살을 직접 영접하는 영성체 행사를 통해 교정했고, [[가톨릭]] 국가답게 가톨릭 전도도 지속적으로 했지만, 그래도 16세기의 중앙아메리카의 문화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집단이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멕시코인 중에서 원주민식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십중팔구 틀락스칼텍인 조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원주민 문화가 스페인의 정복으로 뿌리뽑힌 지금에는 라이벌이자 숙적인 아즈텍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틀락스칼텍인을 연구하는 몹시 미묘한 일도 일어난다. 특히 틀락스칼텍인들과 아즈텍은 같은 언어를 썼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서울말과 지역 사투리 정도의 차이일 뿐 아즈텍과 틀락스칼텍인들은 서로 소통이 됐다고 한다. 거리가 매우 가까운데다 지금도 136번 국도를 타고 오갈 수 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 다만 동맹이라고 해서 없던 면역력이 생기는 건 아니라서 스페인인이 들고 온 전염병에 의한 피해를 가장 크게 봤다. 한때는 몇만의 병력을 제공하던 틀락스칼라의 틀락스칼텍인들이 500명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물론 이민 등으로 인구가 많이 빠져나갔던 것도 컸고 혼혈이 잘 이루어지다 보니 그만큼 수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