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패잔병 (문단 편집) === 가치 === 하지만 제대로 된 지휘관에게 있어서 패잔병은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일단은 사람이 귀한 전쟁에서 사지멀쩡한 사람이라는 것부터가 가치가 있는 존재인 데다가 비록 패배해서 사기도 떨어지고 군기가 문란해졌을지언정 어쨌든 전투를 해봤기에 패배를 한것이고 더군다나 적군의 패잔병 사냥을 피해서 도망쳐온 자들이기에 적어도 평균 이상은 하는 병력자원이다. 강제로 끌려오거나 공명심이나 민족주의 따위로 자신만만하게 자원입대한 신병들은 총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엄마를 찾으며 패닉에 빠지지만 패잔병들을 수습해서 전장에 내보내면 참전 경험이 있는 자들이기에 [[패닉]]에 빠지는 비율도 현저히 적고 나름의 전투경험을 살려서 싸우는 숙련, 정예병이 된다. 나치의 [[국민척탄병]] 사단도 그때까지도 징병되지 않은 중장년층[* 그래도 1차 대전 참전병이 있었긴 했을 거다.]이나 허약체질자들을 긁어모은 사단은 폐급이었으나 패잔, 부상병들을 긁어모아서 편성한 사단은 숙련, 정예병과 맞먹는 전투력을 냈다. 때문에 전략단위에서의 패잔병 수습은 매우 매우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예시를 들자면 [[6.25 전쟁]]에서 남한이 엄청난 병력의 질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부산]]을 지켜낼 수 있었던 건 [[김홍일(군인)|김홍일]] 장군이 사실상 혼자서[* 김홍일 장군은 [[시흥지구전투사령부]]의 사령관으로 보임했으나 휘하 장병은 커녕 [[참모]]조차 안 딸려 보냈다.그야말로 원 맨 아미였던 어처구니 없던 부대였다.] 패잔병들을 긁어모으고 어르고 달래며 재편성하여 3개 [[사단(군대)|사단]]을 재편성하는데 성공하여 지연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재편성에 실패했으면 그대로 쭉 밀렸을 게 뻔했다. 반대로 일본군은 패배한 자들에게 [[할복]]을 강요하거나 [[자살]] 공격에 투입하는 등이 귀하디 귀한 [[자원]]을 그대로 낭비해버렸고 그 결과는 처참한 패배와 집단 탈영이였다. 위에 써있는 마적단도 패배의 책임으로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탈영한 것이니 말 다했다. 또한 옛날 [[신라]]도 [[임전무퇴]]로 대변되는 [[화랑]] 정신을 앞세워 전쟁에서 패배하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을 벌레 보듯이 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김유신]]의 아들 [[김원술]]이 당과의 전투에서 지고도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모로부터 '''의절'''당했다.[* 다만 김원술의 사례는 심하기는 하나 어쩔 수 없던 면도 있던 것이 그 당시 신라는 진지하게 생존이 우려될 정도의 시기를 보냈다. 진평왕 시절부터 시작해 선덕여왕, 진덕여왕, 무열왕 시기까지 신라는 고구려, 백제에게 샌드백 신세였고 이런 상황에서 결국 필요한 것은 임전무퇴 같은 물러서지 않고 싸울 정도로 용기있는 모습일 수 밖에 없었다. 당장에 [[황산벌 전투]]에서 4전 4패하던 신라군의 사기를 되살린 것은 어린 반굴과 관창의 전사였다는 점에서 사기용으로는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것'을 강조한 건 효과가 있었다. 문제는 저 반굴과 관창이 '''김유신의 친척이라는 것이다.''' 김유신이 누구인가? 당시(무열왕 시기)로 치면 여동생은 무열왕의 아내며 그 사이에서 난 딸은 자신의 아내인 인물이다. 그런 사람의 집안의 자제조차 저렇게까지 싸워야 했다. 그러니 자기 친척들은 자제들까지 희생시켜가며 나라를 지키고자 했는데 자기 자식은 (사실 어쩔 수 없었지만) 지고도 살아 돌아왔으니 속마음은 어떻더라도 적어도 겉으로는 철저히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저 때도 신라는 명운을 건 [[나당전쟁]] 중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귀한 자원을 제대로 쓰기 위해선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휘관이라는, 마찬가지로 귀한 자원이 있어야 한다는 게 문제다. 생존 장교를 중심으로 행동하면서 본대 복귀를 원하는 장병들이야 금방 재편성이 가능했지만 장교도 뭣도 없이 졸병들끼리 헤매는 병력들은 재편성이 쉽지가 않다. 총칼로 윽박질렀다간 다시 탈영할 게 뻔하고, 프래깅이나 안 하면 다행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름있는 명장을 투입하거나 전투에서의 승리로 승산이 있음을 입증해야 하곤 한다. 가장 유명한 예시인 [[명량 해전]]은 이순신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칠천량 해전]] 이후로 숨어있던 패잔병들이 어느 정도 집결하여 재건된 함대로 치른 해전이고, 그 이후로도 이 통쾌한 승전보를 들은 패잔병들이 속속들이 집결하여 이후 반절이나마 조선수군을 재건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일단은 무기를 가지고 패주하여 전투능력을 갖춘 병력이기에 그 전투능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얌전히 항복해주면 다행인데 최후의 저항이라도 펼치기 시작하면 골치아파지기 때문.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서 게릴라성 병력으로 바뀌어버렸다간 굉장히 곤란해진다. 예시를 들자면 한국전쟁 당시 패퇴에 실패한 북한군 패잔병들은 후방 빨치산이 되어 남한을 한동안 괴롭게 했다. 그리고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측 기록에 따르면, 매복한 조선군 패잔병 단 한명이 발포한 총탄에 [[숭덕제|홍타이지]]의 매부 [[슈무루 양구리]]가 전사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