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풍자 (문단 편집)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일본과 러시아에 압사당하는 한국.jpg|width=100%]]}}} || || 국제 정치 풍자에 [[고종(대한제국)|한반도 주재 국가 정치인]]이 최초로 등장한 사례[* [[러일전쟁]] 당시의 상황이 그려져 있는 [[프랑스]] 정치풍자 그림엽서로 [[일본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망치와 모루]]가 되어 중간의 [[대한제국]]을 [[압사]]하는 모습이 비유적으로 그려져 있다. 일본이 한반도의 이권을 위해 주도적으로 벌인 전쟁이고, 방심하던 러시아에게 승리하여 그 대가로 구한국을 침탈하여 [[속국]]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때리는 작은 [[망치]] [[메이지 덴노]]와 멍한 표정으로 맞는 커다란 [[모루]] [[니콜라이 2세]] 그리고 제일 작은 크기이며 너덜 너덜해진 옷차림으로 중간에 끼여 고통 받는 [[고종 황제]]의 구도로 그려진 이 그림은 러일전쟁과 한국 침탈의 능동 수동적 역할과 결과를 매우 적절하게 그려낸 정치적 풍자의 전형이다. 실제로 이 전쟁으로 러시아는 [[피의 일요일 사건(러시아)|커다란 타격]]을 입었고 한국은 곧바로 [[을사조약|반신불수]]가 되었다가 5년 후에는 끝내 [[경술국치|죽었다]]. 당대 [[열강]]이던 러시아 제국의 머리를 후려 친 일본 제국은 신흥 열강으로 우뚝 섰다. 또한 이 그림은 다른 방면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고종황제]]가 한국 역사상 최고집권자이자 정치인이자 공인이자 특정인으로서는 '''최초'''로 근대적 시사만평에 풍자된 사례 중 하나라는 것이다. 중간에 끼어 있는 고종황제의 모자 형태가 [[익선관]]이 아닌 [[사모]]이긴 하나 중간에 엉뚱한 [[도승지]]나 [[이조판서]]를 그려 넣었을리는 없고 [[일본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사무라이]]나 [[불곰]]같은 상징이 아닌 각각의 [[군주]]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구한국]] 역시도 동물이나 대표적 일반사람의 모습이 아닌 관모를 쓰고 있는 것을 볼 때 고종황제로 보인다. 약소국인 한국에 대한 서양인의 무지이기도 할테고 정밀묘사화가 아닌 풍자만평이기 때문에 중요시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 풍자([[諷]][[刺]], satire)란 '''어떤 것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 빙 둘러서 유머와 함께 비판하는 것.'''[* 쉽게 말하면, [[비판]]이다. 주로 비판 대상은 [[높으신 분들|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 [[정치]], [[사회]], 등등 이 대상이 될 수가 있다. [[해학]]이랑 정 반대의 의미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예로부터 이어져온 표현방식이다. 보통 풍자를 활용한 작품은 계급 사회나 [[빈부격차]] 등의 사회의 불합리성과 불균등에 대한 비판이 주제이므로 서민적 혹은 반사회적, 반 권위적 성격을 가지며,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시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박탈감을 해소하는 형태로 생산된다. 풍자 분야의 하위 카테고리로 대표적인 것이 [[탈춤]]과 [[블랙 코미디]]이며, 이 분야에서 대표적인 예술가는 '''[[찰리 채플린]]'''이다. 하지만 이렇게 민중을 중심으로 발달한 풍자 작품들은 민중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존재하였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나, 그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기반의 특성 상, 기록을 통한 전승이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소실된 것도 많다. 정치적 풍자의 경우 당연히 권력층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가 엉망인 나라나 독재국가인 경우에는 탄압을 받기도 한다. 그나마 온건한 경우에는 보도통제나 [[섹드립]] 등을 침소봉대하여 방영을 중지시키는 정도로 끝나지만, 심한 경우에는 정치적 풍자를 보도하거나 방영한 언론 기관에 대해 인사적인 탄압을 가하기도 했고, 더 심한 경우엔 풍자를 시도한 사람을 비밀리에 납치하여 [[고문]]하거나 죽여버리기도 했다. 그나마 독재세력 중에서도 세련되게 [[3S 정책]]을 사용하는 독재세력은 언론층에 권력의 나팔수들을 양성해서 오히려 독재세력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을 풍자나 비난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심각한 인신공격, 흑색선전이라 할 지라도 주체가 사실상 독재세력이었기 때문에 고소를 하거나 해결을 하려고 해도 불가능해서 그대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가 일쑤였다. 어떻게 보면 참 역설적이기도 한게, 풍자라는 건 워낙 직접적으로 말하는게 껄끄러워서 돌려 말하는 것인데, 오히려 이렇게 말해도 전할 의미는 다 전달되고, 상대가 차분하게 대화로 풀려고 해도 제대로 된 대화를 형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은 당연히 인정하지 않고, 듣는 사람이 밝히면 자폭이 되니.]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보다도 어그로를 더 끈다. 결국 근현대 이전에는 문자의 옥의 수위를 높이고 권력층들이 쓸데없이 민감하게 반응[* 풍자가 아닌 것까지도 풍자로 받아들이거나 의심하는 것.]하도록 하였다. 당연히 풍자로 인해 당사자가 실질적인 피해를 입으면 명예훼손으로 고소가 가능하다. 그러나 공인이나 기업체 같은 경우는 풍자해도 거의 고소를 하지 않는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풍자를 소비자의 불만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사용한 것을 고소한다면 "나 장사 때려쳤으니 더 떠들어봐" 라는 말과 똑같으므로 고소는 그 도가 넘은 것에만 해당한다. 당연히 소비자 불만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억압하려 한다면 장사가 될리가 없지 않은가. [[켈트 신화]]에서는 풍자는 일종의 강력한 저주의 일종으로 분류되었으며, 심지어 신들조차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신들의 왕 [[다아다]](다그다) 조차 [[지나가던]] 시인이 자신에게 귀한 식사를 대접하지 않으면 풍자를 퍼뜨리겠다고 협박하자 어쩔 수 없이 식사를 대접한다. 물론 아들의 조언을 받아 시인에게 대접하는 음식 안에 금덩이를 넣어 시인을 소화불량으로 죽게 하였지만[* 귀한 금이 들어간 귀한 음식을 대접했으니 딱히 법을 어긴 건 아니라나 뭐라나(...)], 한편으로는 어찌되었건 음식을 대접했다는 것에서부터 켈트 신화에서 풍자를 얼마나 두럽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