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독립당 (문단 편집) ===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1937)와 전국연합진선협회(1939) === 1937년 4월 이후, 중국 관내의 반(反) 민족혁명당 세력은 김구의 한국국민당, 조소앙의 재건 한국독립당, 지청천의 조선혁명당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분리된 상태에서는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들은 당 연합을 시도하게 된다. 조소앙은 재건선언 당시 정치상 견해가 부합되는 세력과의 결합을 천명했고, 민족혁명당을 탈당한 뒤 조선혁명당을 결성한 지청천 역시 일본과 대립하는 모든 세력을 연결한다는 정강을 채택하여 당이 연합할 가능성을 암시했다. 그리하여 1937년 8월, 각 당의 대표들이 난징에 모여 회담한 끝에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약칭 광복진선)가 결성되었다. 그 후의 중국 관내의 민족해방운동은 김구가 이끄는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와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민족전선연맹이 양립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두 단체는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한다는 점에서는 목적이 같았으나, 투쟁 방략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었다. 결국 민족통일전선운동은 김구와 김원봉을 중심으로 하는 양대 진영의 대립만 키우면서 항일독립운동전선의 대동단결은 난관에 직면하게 되었다. 중일전쟁이 절정에 이르자 중국 국민당 총재 [[장제스]]는 둘의 합작을 권유하였는데, 마침 항일독립전선운동을 통일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기에 [[김구]]와 [[김원봉]]은 1939년 5월 「동지동포제군에게 보내는 공개통신」을 발표하여 양 진영의 연합전선 형성을 구체화하게 되었고, 이후 한국국민당, 재건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민족혁명당, 조선혁명자연맹,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청년전위동맹 등 총 7개 단체가 모여 7단체회의를 거쳐 전국연합진선협회가 발족하였지만 몇몇 단체들 의 이탈로 인해 세력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얼마 안 가 소멸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