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족 (문단 편집) == 역사 == 과거 한족이라고 볼 수 있는 집단은 [[주나라]]가 [[허난성]] 북부 [[은허]](현 [[안양시(중국)|중국 안양시]])를 중심으로 세워진 [[상나라]]를 정벌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중국 대륙]] 전역으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이민족을 차례로 흡수했다. 그러나 이는 후대의 한족이 그들의 기원을 이렇게 본다는 것일뿐, 춘추전국시대까지만 해도 각국의 언어와 풍습이 상이[* 진秦의 통일 후 처음으로 문자부터 통일되었고, 언어의 통일은 그보다 늦었다. 이전까지 춘추전국 각국의 언어와 문자가 달랐어도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했던 것은 하-상-주로 이어지는 지배집단이 공통되었기 때문이지, 피지배층까지 동일한 언어와 문자를 사용해서가 아니다. 이는 고구려가 한민족계 지배계층과 말갈-여진계 피지배층으로 구성되어있었던 것과 같다.]해서 같은 문화권일 수는 있어도 같은 족속으로 보기는 힘들어, 정말 하나의 민족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이르게 잡아도 한나라부터이다. 그래서 민족의 이름 또한 한나라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한족이 된 것이다. 중화(中華)라는 단어가 고대부터 쓰이기는 하였으나 이 단어가 혈통적 개념 비슷하게 쓰였던 것은 청나라와 중화민국 사이의 혼란기 동안 [[삼민주의]]의 원형이 등장하면서 청조의 지배 세력이었던 [[만주족]]을 정치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주나라]] 시절에 형성된 "중화사상(中華思想)"의 초기 개념은 "[[천자]]의 영향력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이들은 문명인이고 나머지들은 야만인이며 문화가 없다"라는 식의 주장에 더 가깝다. 이마저도 [[역성혁명|당장에 주나라의 형성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누가 이 천자로서의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 또한 혈통적인 것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일반화할 수는 없는 게, 예를 들어 한 흑인이 중국에서 태어나 자라왔고, 중국의 모든 것에 익숙했다고 치자. 그럼에도 이 흑인을 한족으로 인정 못 하는 사람들도 꼭 있다. 한족이 문화적 개념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외모가 가까운 [[동아시아인]]의 틀 안에서나 해당될 뿐, 겉모습이 대놓고 다르다면 그건 또 별도의 얘기. 상고시대부터 [[돌궐]]-[[몽골]]-[[퉁구스]] 계통의 [[유목민족]]들이 침략하거나 대거 이주, 정복 정착해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당·송시대에 이르기까지 [[선비족]]과 [[거란족]]이 대거 정복 정착하였고 이들은 기존의 한족들과 통혼하고 한족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한족에 동화되었다. 선비족은 아예 한족에 동화되어 수·당제국을 건국했고, 금나라 시기에는 [[여진족]]이 중원을 차지했으며, [[원나라]]와 [[청나라]] 시기에는 각각 [[몽골족]]과 [[만주족]]이 [[중국 대륙]]을 전부 차지했었다. 장강과 그 이남지역도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오스트로아시아어족]], [[몽몐어족]]. [[크라다이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구사하는 동남아와 [[폴리네시아]] 계통의 종족들이 주거하고 있었지만 오랜시일이 흘러 [[묘족]], [[대만 원주민]], [[좡족]] 등 일부 소수민족들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한족에 동화된 상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htm_2007021608461240004300-001.jpg|width=100%]]}}} || || '''전통적인 [[중원]] 지역''' [[http://news.joins.com/article/2637790|출처]] || 이와 별개로 21세기 이후의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한족들의 정착지로 알려진 중원 또한 실제로는 기존 통념과 차이가 있다고 한다. 란저우(蘭州)대학 생명과학학원 셰샤오둥(謝小東) 교수에 따르면 "오래전부터 '한족은 [[중원]](中原)에 살고 있다'고 생각돼 왔으나 이는 특정 시기의 한족을 주변의 다른 종족들과 구별하기 위해 만든 지역적 구분일 뿐"이며 "이젠 한족을 그렇게 지역적으로 따져 정의할 수는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BC 11세기 현재의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 수도를 정한 서주(西周)는 한족 정권에 속하지만, 그 이후인 춘추전국시대에 같은 지역에 세워진 진(秦)은 소수민족인 '서융(西戎:서쪽 오랑캐)'이 주류였다.] 또 중국 역사에 나타나는 중원의 범위는 주로 현재의 산시(山西) 남부와 장쑤(江蘇) 서부 및 안후이(安徽) 서북부 등의 소수 지방을 포함한 허난(河南)성 일대였으나, 이곳에 거주한 사람들을 한족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또 자신들이 "염제(炎帝)와 황제(黃帝)의 자손(炎黃子孫)"이라고 주장하지만 연구 결과 황제와 염제의 발원지도 중국인들이 오랑캐로 치부해 왔던 '북적(北狄)' 지역이었던 것으로 연구 결과 드러났으며 황제와 염제의 발원지는 모두 현재의 간쑤성과 산시(陝西)성에 걸쳐 있는 황토 고원지역으로 이 두 곳 모두 한족의 본거지가 아닌 것은 물론 주요 거주지역도 아니었다고 한다.[* [[http://news.joins.com/article/2637790|"중국에 한족은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