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함병춘 (문단 편집) == 생애 == 1932년에 [[경성부]]에서 [[독립유공자|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부통령|부통령]]을 지낸 [[함태영]]과 고숙원 사이에서 10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 함태영이 무려 60이 되어서 본 아들이다. 함병춘의 큰형인 함병철보다 43세가 어리고, 장조카 [[함인섭]]보다는 25세가 어리며, 종손자 함양호보다도 1살 어리다. 아버지 함태영은 92세까지 장수해서 60살이나 차이나는 막내아들이 성인이 되고 교수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지는 것까지 보았다.]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떠나 [[노스웨스턴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1959년에 [[하버드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무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9년에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가 되었다. 1970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외교안보 담당 특별보좌관 및 정치담당 특별보좌관이 되어 [[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하였다. 1974년에 [[주미대사]]로 부임하였다. 주미대사로서 [[코리아게이트]]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0.26 사태]] 이후 다시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복직하였다. 그러다가 1982년 6월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에 따른 민심 수습책에 의해 [[이범석(1925)|이범석]]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의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1983년 10월 9일에 [[미얀마|버마]]에서 일어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으로 순직하였으며 장례는 [[국민장]]으로 거행되었다.[* [[함태영|아버지]]도 [[국민장]]으로 장례가 엄수된 바 있는데, 대한민국 역사상 부자(父子)의 장례가 국민장으로 치러진 유일한 사례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1445213|관련 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