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함풍제 (문단 편집) == 대중매체 == 중국사에서 함풍제의 치세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 근대사의 도입부라서 함풍제의 캐릭터는 그리 많이 묘사되지는 않고, 등장해도 딱히 좋은 취급은 못 받는다. 좋게 묘사된들 '착하지만 우유부단한' 캐릭터 정도. 그러나 누구도 빼놓지 않는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공친왕|동생]]에 대한 열등감'''이다. 또한 낙마 사고로 인해 함풍제의 캐릭터는 한쪽 다리를 저는 것으로 묘사된다. 또한 친어머니 못지않게 지극정성으로 키워준 정귀비(효정성황후)에 대한 효성이 공친왕 못지않게 지극해서, 공친왕과도 여러모로 껄끄러운 관계에 놓인다. 서태후와 공친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제국의 눈물(원제 홍장녹와)>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이 둘의 관계가 묘사되는데, 어린 시절을 단시간에 묘사하느라 상당히 축약하지만 둘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태후가 여는 만찬에서 혁흔이 전귀비로부터 독을 넣은 생선요리를 권유받는데 정작 아들인 자신은 그걸 못 먹게 하자 귀신같이 독살 음모를 눈치채고는 밥상을 뒤엎어서(!) 혁흔을 구하지만, 어머니가 태후에 의해 자결을 명받고 정귀비가 어미를 잃은 혁저를 혁흔과 함께 키우게 된다. 함께 공부하고 [[보르지기트 셍게린첸]] 앞에서 새로운 검법을 선보이는 등 혁저와 혁흔의 우애는 동복형제 못지않지만, 보수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그 옛 학문에서도 동생만 못함을 스스로도 체감하는 혁저와 달리 혁흔은 '''"[[진시황]]이 영국 대포를 보기나 했냐? [[공자]]가 아편을 피워봤냐? [[자치통감]]에 강산중흥의 비결이 있음?"''' 하는 패기 넘치는 발언으로 신문물 도입과 개혁에의 신념을 드러낸다. 한편 혁저가 다리를 절게 된 원인은 둘 다 코흘리개일 때 시위들한테 승마를 배우던 중 혁흔이 말 빨리 배우고 싶다면서 천방지축으로 겁없이 과속(...)하다가 어설프게 따라가던 혁저가 낙마한 것이라 묘사된다. 주로 1~2화에서 묘사되는데, 찾아보면 형제간 우애가 지극하던 유아기의 모습이 매우 귀요미하다. ~~하지만 급노화한다. [[세조(조선)|수양대군]] 때문에 강제 노화하는 [[문종(조선)|형]]과 비슷한 신세~~ 도광제도 정귀비가 친아들과 양아들 구분하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키웠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과감히 정귀비에게 황태자를 누구로 정할까 물어볼 정도였는데, 정귀비가 어미도 잃었는데 동생이랑 놀다 절름발이가 된 착한 아이가 안쓰럽다고 혁흔 대신 혁저에게 제위를 물려주라 한다! ~~대청강산이 어머니 때문에 망했습니다~~ 태비가 된 후에는 [[서태후|의귀비]]와 친하게 지내는데, 의귀비가 곁을 지키던 임종 때는 함풍제와 공친왕을 착각해서 공친왕에게 할 말을 황제에게, 황제에게 할 말을 공친왕에게 하느라 껄끄러운 사이였던 형제가 화해하나 했지만 황후가 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는 황제에게 남길 넋두리를 공친왕에게 하는 바람에 공친왕이 평소엔 잘 찾아오지도 않던 황제에게 울며 달려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황태후로 책봉을 해달라 졸라대자 자신이 황제가 된 것이 사랑으로 자신을 키워준 태비 덕분임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황태후 책봉 조서를 이미 쓰고 있던 황제가 섭섭해하며 공친왕을 타일러 내보내고는 홧김에 조서를 찢어버린다. 물론 실제 역사대로 성질을 누그러뜨리고는 상중의 공친왕을 적당히 훈계하고 다시 정태비를 황태후로 추봉하긴 하지만, [[제2차 아편전쟁|청군이 영불연합군에 참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태묘에 꿇어앉아 선황들에게 죄를 빌면서도 [[제1차 아편전쟁|어린 시절 아버지가 같은 자리에서 통곡할 때]] 자신은 왜 아버지가 서럽게 우는지 모르는데도 동생은 모든 사건을 파악했던 것을 새삼 떠올리며 다시금 속이 쓰리기만 하다. 대체로 유능하다고는 못해도 선량한 황제의 모습인데, 일국의 군주로서 형제를 잠재적 반역자로 경계하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무조건적인 열폭은 정말이지 불쌍해보일 정도. 1995년에 개봉한 홍콩 영화인 <외전 혜옥란> [* 원제는 <慈禧秘密生活>(자희비밀생활)]에서는 [[신삼국]]에서 관우 역을 한 [[우영광]]이 함풍제를, 그리고 [[양가휘]]가 공친왕을 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양가휘는 10여 년 전, 이한상 감독의 '화소원명원'에서 함풍제역할을 맡았고, 연작 '수렴청정'에서도 함풍제 역할을 연기하여 제3회 금상장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함풍제는 성 불구자로 묘사되며, 혜옥란은 궁녀로 들어왔다가 승은을 받지 못하자 유곽에서 테크닉을 익혀 황제와 잠자리를 갖고, 또한 공친왕과도 관계를 맺어 [[동치제]]를 임신하여 황후로 승진한다. 이후 황제가 승하하자 공친왕을 숙청하고 스스로 수렴청정으로 정권을 잡는다. [[분류:청나라의 황제]][[분류:몽골 카간]][[분류:1831년 출생]][[분류:1861년 사망]][[분류:베이징시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