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헤라트 (문단 편집) ==== VS [[카자르 왕조]] ==== ||[[파일:안사리 헤라트.jpg|width=373]]||[[파일:헤라트 안사리.jpg|width=481]]|| |||| 아랍계 페르시아인 [[한발리파|한발리]] & [[수피]] 학자 아부 이스마일 압둘라 안사리 (카와자 압둘라 알 하라위) 영묘.[* 1428년 샤 루흐가 건립, 시가지 서북쪽 외곽 위치] 도스트 모하마드 칸도 안장된다. |||| 1816년에 이란이 일시적으로 도시를 점령했고 1818년에 재침했으나 카피르 칼라 전투에서 카불의 바라크자이 군대에게 패하였고, 두라니 왕조가 와해된 후인 1838년과 1856년 이란이 다시 침공하였으나 [[영국]]의 도움을 받은 아프간 군대가 이를 격퇴하였다.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 1842년 기존의 재상이던 야르 모하마드 칸이 찬탈하여 알라코자이 왕조가 들어섰다가, 1851년 그가 사망한 후 재차 내전을 겪으며 쇠퇴하였다. 그리고 1856년 마침내 카자르 왕조가 헤라트를 점령했으나 영국이 [[후제스탄]] ~ [[부셰르]]의 페르시아 만을 공격하는 등 강경한 자세로 나오자 (앵글로-페르시아 전쟁) 이듬해 이란군은 철수하였다. 그후 (당시 영국과 친했던) 바라크자이 가문 출신이나 이란에 볼모로 있던 술탄 아흐메드 칸이 옹립되었고, 그는 이란의 봉신으로 지내다가 1862년 파라흐[* 1856년 이란의 헤라트 공격을 틈타 바라크자이 왕조가 점령]를 점령하며 바라크자이 왕조의 도스트 모하마드 칸과 전쟁에 돌입했다. 도스트 모하마드 칸은 대군을 이끌고 친정하여 단숨에 파라흐를 회복하고, 1862년 7월 헤라트를 포위하였다. 공방전 도중인 1863년 3월, 술탄 아흐메드 칸은 병사하였고 어린 아들이 계승하였다. 그러자 도스트 모하마드 칸은 총공세를 펼쳐 도시를 함락하였다. 이로써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은 바라크자이 왕조 하에 통합되었다. 하지만 도스트 모하마드 칸 역시 1863년 6월, 헤라트에서 70의 나이로 병사하여 카와자 압둘라 영묘에 안장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