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철해 (문단 편집) === 김정은 시대 === 2012년 2월 9일, [[김정일훈장]]의 1차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김정은 시대에도 중용되어 [[전창복]]의 뒤를 이어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겸 후방총국장에 임명되었고 2012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의에서 정치국 위원,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는 한편 군 차수로 진급하였다. 김정은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현철해에게 실질적인 업무를 맡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철해의 건강이 걱정되어 그가 사무실에서만 일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에게 새로운 직무를 주었다고 한다. 2023년 5월 18일 현철해 서거 1돐 추모대회에서 리일환이 한 추도사에 따르면 이때 건강이 너무 안좋아져서 외국에 나가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하며 이미 의사들은 2013년이면 그가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진단했다고 한다. 2013년 12월, [[김국태]] 장의위원을 지냈는데 장의위원 서열이 이미 은퇴한 최영림과 동급인 것을 보아서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고령을 이유로 정치국 위원에서 소환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전창복이 다시 후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겸 후방총국장으로 복귀하였다. 한동안 김정은의 현지시찰에도 대거 동행하고 각종 보고대회에 참석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2013년에 접어들면서 활동이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2014년 이후부터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시작했다. 2014년 9월, 인민무력성 총고문에 임명되었는데, 북한의 선전에 따르면 고령의 현철해를 위해 건강관리에 집중하라고 전에 없던 새로운 자리인 인민무력성 총고문[* 사실 이 자리 자체는 김영춘도 역임했다. 김영춘은 7차 당대회 직전까지 정치국 위원을 유지하였으므로 먼저 은퇴한 현철해가 이 자리에 최초로 임명되고 7차 당대회에서 은퇴한 김영춘이 나중에 임명됐던 것으로 보인다.] 자리를 아예 신설했다고 한다. 2015년 11월 [[리을설]]이 죽은 후 다시 장의위원이 되었고 2016년 4월, [[김영춘(1936)|김영춘]]과 함께 인민군 원수로 진급했다. 2016년 5월 조선로동당 7차 당대회가 개최되면서 다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017년에 김정은이 현철해 건강관리[* 2022년 공개된 《태양의 가장 가까이에서》라는 기록영화에는 이 당시 '만성 허혈성 심장병'을 앓아 스텐트를 삽입했다는 진단서가 포착되었다. 파킨슨증후군([[파킨슨병]]과 다른 병으로 보인다.), 시신경위축, 난청 등 노화에 동반되는 질환에 [[지방간]], [[고지혈증]], [[당뇨병]] 등을 앓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지방간 등의 질병을 보면 생전에 술도 잘 마시고 기름진 음식도 잘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를 위한 특별계획서를 하달하기도 하였고 이후 인민무력성이 국방성으로 개편되면서 국방성 총고문으로 유임되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명예는 높아져도 공식석상에 나오질 않았기 때문에 통일부에서도 현철해의 생사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생존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으며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도 중앙위원회에서 탈락하는 등 죽은 게 아니냐는 추측이 더해지고 있었는데[* 하지만 북한에서 나중에 공개한 것에 따르면 8차 당대회에 당대표로 선출은 됐다. 하지만 심각한 건강악화로 인해서 출석은 못했다고 한다. 북한 선전에 따르면 김정은의 총비서 추대에 기뻐서 날뛰었다고 하는데 2017년 이미 파킨슨증후군과 난청 등으로 맛이 갔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실일지는(...) 나중에 김정은이 8차 당대회 참석자 단체사진에 현철해를 합성해서 넣으라고 지시해서 자세히 보면 휠체어를 탄 현철해가 있다.] 2021년 7월, 제7차 로병대회에서 매우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근데 심한 질병을 앓은 모양인지 김정은조차 알아보지 못하거나, 알아보아도 반응이 불가능한 듯한 아주 맛이 간 모습을 보였다. [[https://biz.chosun.com/policy/politics/2021/08/03/O6S7HQI5IFF7DBM3BHRN4JOXJE|이 기사]]와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2557661?sid=100|이 기사]]의 사진들을 보면 김정은이 살갑게 대해 주는데도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고 멍때리고(...) 있다. 한때 '[[https://www.dailynk.com/%EA%B3%B5%EC%8B%9D%EC%88%98%ED%96%89-%EA%B0%80%EC%9E%A5-%EB%A7%8E%EC%9D%80-%ED%98%84%EC%B2%A0%ED%95%B4-%EA%B9%80%EC%A0%95%EC%9D%BC%EC%9D%98|김정일의 남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지도부 공식 수행을 가장 많이 한 군인이었는데 세월이 무상할 지경. ~~저 동네에서 숙청당하지 않는 게 어디겠냐만.[* 농담이고, 사실 김정은 입장에서도 자신의 후계구도를 세운 일등공신이고, 김일성과 김정일부터 3대째 받들어 모신 충신이자 사적으로 상당히 관계가 돈독한 인물이었기에 숙청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또한 현철해의 자녀들은 정치와는 거리를 두며 북한의 고위직을 역임하기에 사후에도 대접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애초에 자신의 조카가 탈북한 상황에서도 김정일이 인정한 인물이고, 몇번 좌천만 당했지 완전한 실각을 당한적은 단 한번도 없다. [[김영남]]처럼 정치력이 상당한 케이스.] ~~ 다만 김정은을 옹립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인지라 김정은 시대 부터는 [[백두혈통]]에 준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덤으로 형인 [[현철규]]의 아들이자 현철해의 조카인 현성일이 [[탈북]]했음에도 현철해가 김정은 옹립을 성공시킨 인물이라서 총살당하는 것을 모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