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형설지공 (문단 편집) == 배경 == [[동진]] 때 사람이었던 차윤(330 ~ 400)은 자가 무자(武子)로, 양주 남평 출신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부지런하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나, 심히 가난하여 기름을 사지 못해 밤에는 제대로 공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름]] 밤이 되면 명주 주머니에 수십 마리의 [[반딧불이]]들을 잡아 넣고 그 빛으로 공부를 했다. 결국 그는 이부상서([[행정안전부 장관]])에 오르고 나중에는 상서랑까지 승진했으나, 그 당시에는 동진 말기로 황족들과 [[귀족]]들은 [[세금]]을 마구 거두고 백성들은 [[기근]]으로 숨지는 등 매우 혼란스런 시대였다[* [[황제]]였던 [[진효무제]]는 [[비수대전]] 이후에 사치와 방탕을 즐기다가 장귀인에게 [[암살]]되었다. 청태전이 완공되자 효무제는 장귀인과 술을 마셨는데 효무제는 '''넌 이제 30살이 넘었으니 이제 별로라서 다른 여자를 찾아야겠다'''라고 말했다. 술김에 농담으로 한 것을 진담으로 여긴 장귀인은 그날 밤 효무제와 잠자리에 든 후 이불을 덮어 씌워 질식사시켰다.][* 원래 효무제는 사치에 빠지면서 실권을 동생이었던 회계왕 사마도자에게 맡겼는데 사마도자는 일단 효무제의 [[장남]] 안제를 즉위시켰지만 그가 '''더위도 추위도 못가릴 정도의 중증 [[지적장애|정신박약아]]'''라서 효무제 암살 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무능]]한 사마도자 대신 그 아들 상서령 사마원현은 유능했으나, 잔인하고 전횡을 일삼았다. 그는 이걸 그 아버지 사마도자에게 알렸지만 오히려 부자 사이를 이간한다는 책망을 듣자 [[자살]]했다. 그 후 각지의 반란과 [[환현]]의 난이 일어나 사마도자 부자를 비롯해서 황족들과 귀족들은 대거 제거되었다. 결국 그가 자살한지 20년 후에 당시 실권자이자 환현의 난을 제압한 [[유유(송무제)|유유]]가 동진을 멸하고 [[송(육조)]]을 세웠다.]. 손강은 차윤과 비슷한 시기의 사람으로, 마음이 맑고 깨끗했으며, [[독서]]를 좋아했다. 그 역시 집이 가난해 기름 살 돈이 없어 밤에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이에 손강은 [[겨울]] 밤이 되면 창밖에 쌓인 눈에 반사된 달빛을 등불 삼아 부지런히 공부했고, 결국 어사대부에 올랐다. 차윤과 달리 손강의 이야기는 어사대부가 되었다는 것이 끝이고, 이후의 행적은 불명이다. 후에 손씨 가문에서 이 일화를 바탕으로 손강의 자손이라 주장하는 영설당(映雪堂)파[* 손강의 자손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당나라]] 때 명의 손사막, 그리고 중화민국의 국부 [[손문]] 등이 있다.]가 생겨났고 거기서 그의 행적이 좀 더 추가되긴 했지만, 전형적인 족보 가꾸기의 작업에 불과할 뿐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