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찌민 (문단 편집) ==== 사상에 대한 과대평가 ==== 허나 일각에서는 호찌민에 대해 시대를 잘못 예측한 이상주의자 또는 인품이 훌륭했어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 독재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또한 [[마오쩌둥]]이 그렇듯, 68혁명 여파로 서구권에서 [[히피]]들에 의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외부적으로나, 베트남 내부적으로나 뭔가 뜬구름 잡는 훌륭한 민족지도자로서 '''존경'''만 받지, 제대로 '''연구'''된 적이 별로 없다고 주장한다.[* 아래 서적 문서에 나온 '호치민 평전'을 집필한 윌리엄 J 듀이커는 호찌민을 연구한 인물로서 유명하다. 그는 30년간 호찌민을 연구했고 30년간의 노고 끝에 호치민 평전을 만들 수 있었다.] 당장 이 항목만 봐도 호찌민이 이만큼 훌륭한 인물이었다, 피상적인 60년대 신좌파의 낭만적인 미화적인 시선이 지배적인데,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사생활이 굉장히 깔끔담백한 검소 그 자체였던 건 [[레닌]]과 [[스탈린]]도 마찬가지고, 공산주의는 부분적으로 빌리기만 하되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더 중점을 둔 건 편협한 반공 자체만을 위한 반공적 시각이 아니고선 전혀 그 자체로는 딱히 긍정적인 사실도 아니다! 사실 사회주의권의 많은 폭군들은 '사상적으로 순수한'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거리가 먼 정치를 한 반면 조국과 민족 타령은 입만 열면 해댔고, [[마오쩌둥]]이 주장한 [[마오이즘]] 역시 이론적인 차원에선 소련의 원형과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애초에 마르크스-엥겔스 듀오 본인들이 아예 이론뿐만 아니라 진짜 혁명을 일으켜 사회주의 국가를 세워서 자신들의 이론을 그대로 실천한 적이 없었던 만큼, 이리 보듯이 현실 정치의 역사에서 사실 순수한 오리지널 공산주의 국가의 원형을 찾는다는 발상 자체가 사실상 허상에 가깝다. 반공 가치관의 영향인지 한국의 미디어물이나 인터넷, 서적, 지식인들과 논객들 사이 평론을 보면 '''"빨갱이들 중에서는 그나마 덜 빨갱이스러웠다"라는 어조로 [[티토]]나 호찌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 위 문단에서 설명했듯이 현실 정치사에서 순수한 공산주의 국가[* '공산주의 국가'라는 표현은 사실 그 개념 자체가 마르크스주의 이론 내에서 존재할 수 없는 모순이다. 공산주의는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생산 수단의 사적 독점 체계가 끝장 나면서 국가와 민족의 억압이 사라진 하나의 '''상태'''이기 때문이다.]라는 물건 자체가 존재한 적이 없고, 해당 지도자들이 다른 공산권 독재자들에 비해 긍정적으로 평가 받는다면 그건 그들이 저질렀던 학살과 정치적 탄압이 다른 공산권 국가들에 비해 여러가지 이유로 덜 부각됐기 때문이지,[* 실질적으로, 사실상 소련이 세워준 공산 지도자가 아니라 스스로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서 권좌에 오른 지도자 중에 대규모 양민학살이나 혹독한 인권탄압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지도자는 [[담딘 수흐바타르]]처럼 권좌에 오르지도 않고 죽은 케이스를 제외하곤 거의 없다. 끔찍한 만행들이 하술된 호치민 외에도 티토 역시 매우 잔혹한 [[https://www.total-croatia-news.com/politics/17433-tito-era-mass-graves-located-on-route-of-new-zagreb-cableway|통치를]] [[https://knightfoundation.org/reports/ruins-war-nations-history-preserved/|했다]].] 사상적으로 더 순수하거나 덜 순수해서 긍정적으로 평가 받는게 아니다.[* 그리고 사실 "사상적으로 덜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다"란 평가는 마오쩌둥 같으면 몰라도, 티토의 경우는 당장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땅이었던 [[크로아티아]] 출생으로 [[1차 세계대전]] 당시 [[제정 러시아]]군에게 전쟁 포로로 잡혀 있던 와중 [[러시아 혁명]]이 터지고 여기 가담하면서 공산주의 혁명가로 재탄생한, 공산주의 혁명가로서 경력은 바로 그 [[레닌]]보다 좀 짦으며 최초의 공산 혁명을 직접 목격하며 전간기 [[코민테른]]에서 활약하면서 두각을 낸 세대다. 본인이 남긴 집필물을 봐도 일단 전문 지식인이 아닌 군인이자 현실 정치 지도자란 점을 감안하면 딱히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사상적 이해나 충성이 비교할만한 동시대인들에 비해 떨어진다고 주장할 근거도 없다. 티토의 경우 그냥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국가 대 국가 정책에서 반소 노선을 취했다라고 평가해야지, (사상적인 측면에서) "덜 공산주의적이었다"라고 말하는건 합당하지 않다. 오히려 냉전 시기 국가간 진영 논리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역사상 사회주의권의 비교 평가가 가능한 현대에 들어와선 역사학자, 좌파 운동가들 사이 티토 치하 구 유고 연방의 [[노동자 자주 관리 체제]]야 말로 스탈린 시절부터 [[국가 자본주의]]로 변질되었던 소련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 체제에 반대되는 대안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활발하다. 사실 21세기에 와서 이념에 대해 얼마나 순수하냐 정통이냐 이런거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베트남의 경우 친소적이고 베트남 내부에서만 떠들어대지 밖으로는 무슨 정확한 사상 체계인 양 흉내도 안내고, 아무도 그리 봐주지 않는 '호찌민사상'이란 물건만 제외하면 딱히 자신들만의 요상한 사회주의 브랜드를 주장한 적이 없는데, '''이건 말 그대로 사상적인 차원에서 보면 굉장히 유연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호찌민에 대한 구체적인 정치인으로서 평가가 아닌, 그냥 대충 훌륭했던 사람이란 식의 두루뭉실한 인식은 사실 다음과 같이 호찌민을 상대했던 다양한 입장들의 인식이 맞물리고 증폭되어 형성된 점이 크다. ||1. 프랑스 입장에서 19세기 [[알제리]]의 압드 알 카데르 같은 자신들을 더럽게 애먹인, 악질 반란 분자지만 능력 하나만은 뛰어난 초월자 (혹은 프랑스의 위신을 위해 뛰어나야만 하는) 2. 미국 입장에선 자신들이 최초로 패배한 전쟁에서 적군을 지휘한 적이지만 위대한 천재 지략가 (역시 미국의 위신을 위해 위대해야만 하는) 3. 언론, 학계에서 영향력이 강하며, 베트남 반전 운동에서 큰 영향을 받은 [[리버럴]] 진영에선 저 멀리 떨어진 가난한 탈식민지 동남아인들보다 훨씬 더 가깝고 얄미운 숙적인 미국 내 군부와 정치인들이 대표하는 '''보수 우익의 가랑이를 대신 걷어 차 준,''' 직접적으로 언급하긴 뭣 하지만 어쨌든 고마운 양반 4. 특히 여기에 낑겨 어쩌다가 어중간한 비중으로 참전했던 한국인 입장에선 유교권 국가의 민족주의 지도자이며, 실제로 [[박헌영]]과 레닌 학교 동문이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교류한 경험이 있는 등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었기에 생기는 호감|| 대미 항전, 대불 항전을 벗어나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젊은 혁명가로서 살아간 호찌민이나, 초기 인도차이나 공산당의 행적과 발전에 대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려진 붕 뜬 성자와 같은 두루뭉술하고 막연하게 긍정적인 이미지는 호찌민 본인과 베트남 공산당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형성한 이미지일 수 있으며, 실제로는 '''남의 힘(주로 프랑스 식민 총독부)을 빌려 적을 제거하는데 능숙했으며, 필요에 따라 자신은 공산주의자라 했다가 민족주의자라 했다가 왔다갔다 하며 공산권, 서방 양쪽 상대로 말을 잘 바꾸었던, 아주 영악하고 노련한 희대의 협상가이자 당대의 진정한 [[정치인]]'''에 가깝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