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개장터 (문단 편집) === 개요 === [[1988년]]에 발표한 [[조영남]] 작곡·노래, '''[[김한길]]'''[* [[소설가]]이자, [[배우]] [[최명길(배우)|최명길]]의 [[남편]]이며, 전 문화관광부 장관,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를 역임했던 그 사람 맞다.] 작사의 [[노래]].[* 대부분의 음원 사이트 등지에서는 조영남 작곡·작사로 표기되어 있으나, 음저협 DB에는 김한길 작사로 올라가 있다. 처음에 조영남 작사로 등재했다가 추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조영남이 작곡, 작사, 노래를 다 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1&aid=0002886032|여기 기사]]를 보면 조영남이 직접 김한길과 작사를 했다고 얘기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화개장터는 조영남이 [[이북|휴전선 이북]] [[황해도]] 출신인지라 남북 분단의 아픔과 [[지역감정]]의 대립 등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영호남 지역갈등|지역감정으로 갈라서기 시작한]] [[경상도]]와 [[전라도]]의 화합이라는 뜻을 가지고[* 이 노래가 발표된 시점에는 영남과 호남의 정치적 지역 갈등이 극에 달했는데 1987년 12월 [[제13대 대통령 선거]]와 1988년 4월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로 갈등의 깊이가 극심함을 드러냈다. 호남에 연고를 둔 [[김대중]]과 [[평화민주당]]이 영남 지역에서 뭇매를 맞았고 [[대경권|TK]] 기반의 [[노태우]]와 [[민주정의당]], [[부울경|PK]] 출신의 [[김영삼]]과 [[통일민주당]]이 호남에서 거센 반발을 샀다. 물론 노태우와 민정당에 대한 혐오는 지역적 갈등 문제 외에 [[5.18 민주화운동/학살|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의 영향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최 진사댁 셋째 딸]]', '사랑없인 난 못살아요', '딜라일라' 등과 함께 조영남을 대표하는 노래다. 지금도 간간히 조영남이 무대에 올라오면 꼭 부르는 노래 중 하나이며, 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가 아는 애창곡이기도 하다. [[인기]]가 많아서 [[티스토어]], [[이가탄]] 광고 [[CM송]], [[지금은 라디오 시대]] 로고송 등으로도 화개장터가 쓰인 적이 많다. 아이들이 조영남의 다른 곡은 몰라도 화개장터는 음만 들어도 알 정도로 상당한 스테디셀러나 다름없는 히트곡이다. 당시에는 정말 가늘고 길게 간 노래였으며, 가요톱텐 기준으로 15~30위 사이에서 거의 몇 달을 버틴 노래다. 히트곡의 개념이 무조건 가요톱텐의 10위 안을 얘기하던 시절에는 빛을 못봤으나, 저 정도 성적을 빌보드 연말차트 방식으로 환산하면 20~30위 권은 충분하다.[* 빌보드 기준으로 짧게 1위한 곡들이 이 정도 연말 순위라고 보면 된다.] 노래가 나온지 3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많이 불리고 있다.[* [[김흥국]]의 히트곡 59년 왕십리와 비슷한 케이스인데 마찬가지로 몇달동안 중위권에 오래버틴 곡으로 당시 노래방문화가 선도되면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노래다.] 이 노래는 중간중간에 청중들 쪽으로 마이크 던지기가 포인트다. 실제로 던지는것이 아니라 청중들 쪽으로 마이크를 빠른 속도로 휙 내리치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