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화력덕후 (문단 편집) === 현실 === '''현실의 모든 군대는 고대부터 강력한 원거리 타격무기를 얻기 위해 매우 노력했다.''' 그나마 원거리 무기가 투창이나 화살, 투석 정도밖에 없던 시대이던 고대~중세는 방어구를 높이는 것으로 타개책을 마련했으나, 본격적으로 원거리 무기의 타격력이 갑옷의 방어력을 뛰어넘는 화약시대 이후부턴 더 강력한 원거리 타격수단을 얻기 위한 경쟁에 접어들게 된다. 그나마 현대에는 '비행기'와 '미사일'이라는 차세대 타격무기의 등장으로 대포의 지분이 다소 줄었지만, 각자가 대포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비행기를 이용한 폭격은 기상 상태에 따라 출격를 못 하는 데다 포격에 비하면 비행기가 싣고 다니는 폭탄의 양적 한계가 있어서 한번 화력을 투사한 후의 텀이 대포에 비해 월등히 길고, 미사일은 대포에 비해 비용이 월등히 비싸다. 때문에 여전히 대포 및 포병을 중요시하고 있다. * '''상당수 국가들의 군대들''' - 예나 지금이나 인적자원 손실은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의 큰 문제였다. 과거에는 '''병사 = 노동력'''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손실이 적어야 했었고 현대에서는 기술력의 발전으로 병사를 육성하는 비용이 증가했으며 [[반전주의|반전여론]]이나 [[인권]] 등의 가치관적 이유가 추가되어서 과거보다 더욱 인적자원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 방비가 잘 된 적의 진지를 효율적으로 돌파하기 위해선 장거리 화력 투사무기가 필수적으로 요구됐기 때문에 모든 국가들의 군대는 이러한 장거리 타격 무기의 발전에 만전을 기했다. 고대~중세에선 [[발리스타]]나 [[투석기]]가 이를 차지했고, 화약이 발전된 이후에는 각종 대포가, 현대 이후에는 미사일 등의 타격무기들이 이를 대체했다. 현대에도 대포는 여전히 미사일이나 비행기와 더불어 '''장거리 화력 투사무기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으며, 두 무기보다 가성비 면에서 워낙 출중하기 때문에 여전히 모든 나라의 국가들은 대포류의 발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 [[조선인민군|북한군]] - 역시 혈통은 못 속이는지 북한도 상당한 화력덕후다. 1950 ~ 1970년대 만들어진 구식이긴 하지만 견인포 약 4,000문, 자주포도 약 4,000문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방사포]](다연장로켓)등의 각종 화기를 보유하고 있다. 강력한 화력에 집착한 나머지 만든 게 [[핵무기|그것]]이니 말 다한 셈. 얘네도 보유 대수만 따지면 세계적이다. 다만 포병은 야포만 있어서는 안 되고 필요한 화력을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지점에 적절한 양을 쏟아붓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 분야의 능력이 크게 부족하다. * [[독일군]] - [[보불전쟁]]에서는 보병 세력의 열세가 장비 같은 면에서 나타났음에도 선진적인 포병 운용으로 승리했고, 이러한 포병 전력의 강력함은 효율적인 화력 통제와 곡사포의 빠른 도입 등 선진적인 포병 교리로 나타나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유지되었다. 종전 후 군비 제약으로 인해 중(重)포를 운용하지 못 하게 되자 항공전력을 육성하는 한편 포병전력으로 하여금 장비 일원화와 기동, 포병 집중과 같은 운용적인 면으로 제약을 극복케하여 제2차 세계 대전기 초반의 승리와 중반기까지의 전선 유지에 일조하게 했다. 이러한 화력 욕구는 [[네벨베르퍼 다연장로켓]] 같은 교리에 적합한 병기는 물론 조약으로 인한 억눌린 욕구의 표출로 볼 수도 있는 [[크고 아름다운]] --그렇지만 굉장히 비효율적인-- [[구스타프 열차포]]와 [[600mm 자주박격포 칼]]로 나타났다고 [[카더라]]… 이런 이상한 1회성 프로젝트 이외에도 육해공 무기 아무 데나 갖다 붙여도 성능을 본전 이상 뽑던 마법의 대포 [[8,8cm FlaK|88mm 대공포]]도 화포 역사에 길이 남을 명품이었다. 21세기 현대에도 자주포 성능의 끝판왕 [[PzH2000]]를 운용 중이고 이 자주포는 한국의 대표 명품 자주포 [[K-9]]이 끝내 넘지 못하는 [[통곡의 벽]]으로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 * [[소련군]] - [[독소전쟁]] 개전 전까지만 해도 화포의 숫자는 독일군보다 많을 정도로 하드웨어적으로는 더했다. 크고 아름다운 [[120mm 박격포]]를 운용하여 독일군이 베껴가게 했을 정도. 이 소련군 대구경 박격포는 용산 전쟁박물관 야외 전시관에 가면 볼 수 있는데, 보는 순간 왜 독일군이 베껴갔는지 알 정도로 다른 구경의 박격포와는 차원이 다른 포스를 자랑한다. 수많은 독일군 병사들이 '''스탈린의 오르간'''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수많은 독일군 참전용사들의 등골을 아직도 서늘하게 했던 [[카츄샤]]도 있다. 그리고 피의 수업료를 지불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포병 역시 성장시켜 대규모의 숙련된 포병을 갖추게 되었고, 붉은 물결이 가는 곳마다 불벼락을 동반케하였다. 거기다 크고 아름다운 핵폭탄의 끝판왕 [[차르 봄바]]가 있었다. 이젠 [[ATBIP]]라는 세계 최강의 비핵무기까지 개발했다. 그밖에 [[자주포]], [[견인포]]는 물론이고 대전차화기, [[무반동포]]등 대구경화기로도 수량은 단연 세계 1위이고 화력 면에서도 타국 장비들에게 밀리지 않는다. 소련-러시아 해군은 막강한 세계 1위 미해군과 허구한날 비교당했기 때문에 약체 이미지가 있지만 [[P-700 그라니트|크고 아름다운 데다 빠르기까지 한]] 초음속 대함 미사일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실전배치하고 그것들을 무지막지하게 양산해 온갖 함선들에다 체급 불문하고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등, 미 해군 다음 가는 화력덕후. 역사적으로도 2차 대전 때 타국이 대전차전에서의 관통력을 중시하여 88mm나 [[M36 잭슨|90mm 전차포]] 같은 것을 쓸 때 대전차에만 치중한 관통력보다 다목적적인 화력을 더 중시하여 100mm 대공포 대신 야포 기반인 [[IS-2|122mm]]를, 107mm 대전차포 대신 [[KV-2|152mm]]를, 관통력이 높은 57mm 장포신 대신 [[T-34-76|76mm]] 야포를 장갑차량에 쑤셔박았었고, 항공기에도 [[P-39 에어라코브라|37mm]], [[Yak-9|45mm 기관포]]를 기수에 장착한 걸 [[이것은 좋은 것이다|좋다고 몰고 다녔다]]. ~~[[다포탑 전차|아예 전차에 백화점을 차리기도 했다]].~~ * [[이오시프 스탈린]] - '''"포병은 현대전의 신이다."'''라는 위의 어록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발언을 두고 '스탈린은 포병 출신이라서 어느 정도 자뻑도 들어간 발언'이란 오해를 하기도 하는데, 스탈린은 [[기병]] 출신이다. 스탈린은 심지어 회의 중 '탄약을 아끼는 건 범죄다.', '포탄보다 더 아까운 게 장병들의 목숨이다'라고 하며 [[http://panzerbear.blogspot.kr/2015/12/blog-post_7.html|포병 화력을 매우 강조하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건 [[독소전쟁]] 당시 소련군의 물량공세, 일명 ''''[[우라돌격]]''''을 어떤 식으로 했는지만 봐도 다 알 수 있다. 흔히 '''"우라~!!!!"''' 하면서 돌격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거기에 동원 가능한 화력을 최대한 많이, 그리고 체계적으로 쏟아부어 지원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를 본 [[에너미 앳 더 게이트#s-5|독소전쟁 당시 소련군 참전 용사들의 반응]]만 봐도, 단순한 어택땅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니손 일리치 겔페린 - [[워 썬더]]에서 [[Pe-8]]이 들고다니며 지상의 모든 것을 멸망시켜 버리는 것으로 악명높은 5톤 지표파괴폭탄 "FAB-5000"의 개발자. '''저 5톤 중 무려 3.2톤 가량이 작약이었다.''' * [[명나라]] - 임진왜란 당시 고작 쇠구슬을 날리는 조총만을 화기로 사용했던 일본군들은 평양성 전투 때 [[크고 아름다운]] 명나라군 화기에 호되게 당했고, 그래서 명나라군을 매우 두려워했다고 한다. 명나라군은 다양한 구경의 대포뿐만 아니라 현재의 다연장 로켓포 같은 무기도 있었다. 명나라의 화력은 당시 중국에 온 서양 선교사들도 놀랄 정도였다. [[사르후 전투]]에서 명나라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후금의 철기병들이 [[영원성 전투]]에서 명군의 포격으로 참패를 당하였고, [[이자성]]에 의하여 명나라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후금은 산해관을 중심으로 한 요동 방어선을 자력으로는 넘지 못하였다. 정확히는 [[명나라]]가 [[이자성]]의 난으로 멸망한 건 아니다. 북경이 점령당한 뒤에도 산해관에는 2만 명의 명나라 최정예군이 주둔 중이었다. 이자성은 오삼계를 지원해 계속해서 요동 방어선을 지키고자 했지만 자기 본가가 이자성에게 약탈당하자 분노한 오삼계가 청나라를 막는 것과 북경을 탈환을 동시에 못하는 걸 알게 되자 [[어른의 사정]]으로 청나라에 문을 열고 항복했다. 이때 오삼계의 직책은 영원총병. 다만 요동 방어선만 뚫지 못 했을 뿐이지 베이징을 우회해서 산동성 깊숙히 청군이 처들어간 적도 있다. 보급선의 문제로 약탈 정도가 한계였지만. * '''[[미군]]''' - 헬기장 순간 제조기 '데이지 커터' [[BLU-82]], 크고 아름다운 [[MOAB]]과 [[벙커버스터]] [[GBU-57]]가 있다. 그밖에 어느 군을 가든, 화력 투사 능력과 경험 및 노하우는 자타공인 세계 최고. 지금이야 미 육군이 원정군 위주의 가벼운 편성에 타군의 화력을 끌어오는 방식이라 화력이 떨어져 보이지만, 물량과 군수지원, 그리고 네트워크화가 충실한 미군은 그냥 필요할 때 그만큼 즉시 끌어오면 그만이라서 별 상관은 없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타군은 비싸서 못 쓰던 [[VT신관]]을 쓰는 포탄을 대량으로 사용한 데다가, 사단급까지의 포병 편제는 상대인 나치 독일 및 동맹국인 소련보다 장비 면에서도 뒤처지지 않았고, 체계도 상당히 잘 짜여 있었다. 미군은 압도적이다시피 한 제공권을 바탕으로 하여, 추축국의 포병 전력을 우수한 장비와 편제, 그리고 압도적인 물량과 패기로 제압하여 유럽 서부전선 포병의 깡패로 군림했다. [[6.25 전쟁]]에서는 군비 감축의 영향으로 포병을 대량으로 운용하지 못해 고전하였고 중반까지도 해공군의 화력을 당겨왔으나 [[중국 인민지원군]]이 참전한 이후 포병을 다시 대량으로 운용하기 시작하자, 중국군의 인력을 포탄과 --'중공군 1인:포탄 1개'급으로-- 교환하는 미친 짓을 중공군에게 강요하였고 결국 이러한 흐름은 [[백마고지 전투]]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현대에 들어서 포병 전력을 전면전의 용도로 받아들이는 정치적인 기조와 비교적 가벼운 원정군을 주축으로 해공군에서 화력을 끌어오는 게 일상이 되어 러시아나 중국 등 동구권 국가들에 비해서 다소 약하다는 인식이 있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으며 포병전력도 최강인 게 미군이다. 오히려 미군은 체계적인 네트워크화와 정밀유도무기의 개발에 몰두하며 점점 더 정확하고 예측할 수 없으며, 치명적인 화력덕후가 되어가는 중이다. -- [[AC-130|이제는 포병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 * '''[[커티스 르메이]]''' - 그의 어록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는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빨리 끝내야 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고 [[도쿄 대공습|실제로도 그렇게 행했다.]] * [[매튜 B. 리지웨이]] - --일단 중간 이름이 '''[[벙커(스타크래프트 시리즈)|벙커(Bunker)]]'''다.-- 한국전쟁에 비밀리에 참전한 중공군에 개털리고 [[1.4 후퇴]]까지 겪으며 개고생하던 [[유엔군사령부|유엔군]]의 숨겨진 장점이었던 막강한 화력과 [[쇼미더머니|풍부한 보급]]을 잘 살린 반격 작전을 통해 전선을 38도선 부근까지 수복했다. * [[제임스 밴 플리트]] - 중공군의 제5차 공세 당시 미군에 할당되어 있던 작전 시 탄약 보급량의 5배를 초과하는 탄약을 포병 부대가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이른바 '''밴 플리트 탄약량'''이라는 무제한급 화포 사격을 승인하여 무자비한 화력전으로 중공군의 제5차 공세 및 중공군의 '보병을 이용한 산악 기동전술'를 좌절시켰다. * [[김영옥(군인)|김영옥]] - 2차 세계대전, 6.25 전쟁에 참전한 [[한국계 미국인]] 지휘관. 어째서인지 지원 요청이 별로 없어서 심심해하던 까마득한 상급부대 "포병대"부터 독일 공군이 개작살나는 바람에 할 일이 없어진 대공포까지 싹싹 긁어모아 화력 지원을 받았다. 이게 제법 신통했던지 미군 전투 교리에도 반영되었다. 당시는 [[대대]]급 작전에 [[군단]] 포병이나 [[군]] 포병의 지원을 받았다. 어차피 그 사람들은 당시 교리상 대부분 대포병 사격 아니면 쏠 일이 없는 데다 [[연대(군대)|연대]] 포병이 시달리던 포탄 부족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기 때문에 일단 요청을 받으면 신나게 쏴줬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군이 적과 인접하면 그때부터 대공포인 40mm 보포스 기관포와 12.7mm 네 개를 엮은 [[미트초퍼]]로 긁어서 보병의 돌격을 엄호했다고. 참고로 대공포 아이디어는 독일군이 20mm [[Flak30/38]] 대공포를 대지상군용으로 쓰는 것으로부터 얻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88mm로 기재되어 있었으나, 김영옥 대령의 평전에서 직접 20mm 대공포라고 기재되어 있어 수정함. * [[영국군]] - 영국의 화력덕후질은 전열보병 시절부터 유구하였다. 당대 전열보병들은 보통 3열 혹은 그 이상으로 횡대를 구성하여 사격하는 것이 기본이었지만 [[레드 코트]]들은 실탄 사격 훈련으로 다져진 우월한 연사력을 바탕으로 2열 횡대의 사격진, 일명 [[씬 레드 라인]]을 구성하였다. 따라서 비슷한 규모의 군대와 서로 사격전을 한다면 영국군은 타국 대비 50%의 총알을 더 많이 퍼부을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유럽 열강들을 두들겨 패고 다녔다. * '''최초의 자동발사 기관총'''으로서 모든 자동화기들의 원조인 [[맥심 기관총]] 또한 영국에서 개발한 무기이다. --이런 명작을 만들어낸 영국은 [[SA80|훗날…]]-- * 1차대전 때에도 '''최초의 [[Mk 시리즈|탱크]], 최초의 폭격기[* 폭격기의 용도로 개발된 폭격기]''', [[밀즈 수류탄]][* 세계 최초의 [[지연신관식 수류탄]]], [[백린탄]], [[리벤스 화염방사기]], 스토크스 휴대용 박격포[* 현대적인 박격포의 원조] 등을 개발, 운영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 20세기 초반 당시 세계 최강이였던 [[영국 해군]]은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건조해내며 '''[[거함거포주의]]'''의 시대를 태동시켰다. 여러 전투의 양상을 보면 알겠지만 영국 해군은 배를 적선에 가까이 붙여 화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전투 방식을 선호하였다. *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영국도 충실한 화력덕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장 댐버스터 도약폭탄부터 [[벙커버스터]]의 선조라 불리는 [[톨보이]], [[그랜드슬램(지진폭탄)|그랜드슬램]] 같은 [[지진폭탄]], 대전차포인 [[17파운더]]와 [[셔먼 파이어플라이]], [[M4 셔먼|셔먼 튤립]] 등을 보라. * '''[[아서 해리스]]''' - 영국 버전 커티스 르메이로, 일명 폭격기 해리스. 독일이 폴란드, 네덜란드, 영국에 가했던 폭격을 그 이상으로 돌려주어 독일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 강렬한 이미지로 인해 서양권에서는 밈으로까지 떠올랐다. * [[오스만 제국]] -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콘스탄티노플 함락|을 공격할 때]] 당시 '''세계 최대''' [[사석포]] "우르반 대포"로 옛날부터 유명했던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을 깨부수었다. 그전에도 전쟁에서 적극적으로 포병을 사용해왔다. * '''[[조선군]]''' - 누가 [[부전자전]] 아니랄까봐, 선대 국가인 조선도 상당한 화력주의 국가였다. [[천자총통]]을 위시한 온갖 총통류는 기본에, 의병 단위에서 [[비격진천뢰]]라는 지연신관+파편탄을 활용해대고, 현대의 날탄과 유사한 [[대장군전]]을 써대는 무식한 화력주의 국가였었다. 양란 이후에도 [[불랑기포]]처럼 최신 기술을 받아들이는데 거리낌이 없었을 정도. * [[문종(조선)|문종]] - 수백 발의 화살을 한번에 발사할 수 있는 다연장 로켓 병기인 [[화차(무기)|화차]]를 '''직접''' 설계했다. * '''[[이순신]]''' - 당시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었던 대함 포격전으로 일본 수군을 발라버렸다. 해전에 쓰려고 [[거북선|철갑선]] 비슷한 것을 만들고 [[대장군전|대함 미사일]] 비슷한 거도 이용하는 등 최무선의 뒤를 이은 동아시아 해전계 함대함 포격전의 선구자이다. * '''[[최무선]]''' - 당시 원나라의 국가 기밀이었던 화약 제조법을 빼내 한국에 화력덕후의 전통을 세운 한국 역사상 화력덕후의 원조로, [[진포해전]]에선 동아시아 최초로 함포를 동원해 왜구를 박살냈다. * [[프랑스군]] - 2차대전의 졸전에 묻혀있지만 서양에서 이 분야의 원조집이다. 혁명기에는 파리 시내에서 일어난 반란을, 시내에서 화포를 쏘는 것으로 진압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한 포병장교]]가 반프랑스 동맹을 화끈한 화력전(과 병과 간 유기적 결합, 빠른 기동)으로 격파하고, [[나폴레옹 전쟁|오히려 유럽 정복을 시도한다.]] 이런 전통은 계속되어 최초의 현대식 화포인 [[1897년식 75mm 야포]]를 개발하고, 105mm, 155mm 야포와 60mm, 81mm, 120mm 박격포를 개발, 미국과 서방 세계의 표준이 된다. 미터법 같은 것은 [[미국 단위계|안중에도 없는]] 미국에서 [[미합중국 육군|육군]]만큼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철저하게 [[국제단위계|미터법]]을 숙지하고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할 수 있다. * '''[[잔 다르크]]''' - [[백년전쟁]] 당시 신무기였던 대포에 관심을 보여 전투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또한 불가사의하게도 적군인 영국군 화포의 스펙과 활용법도 잘 알고 있어서[* 잔 다르크는 문맹이어서 고급 첩보 등을 혼자서 소화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휘하 장수들 입장에서는 정말로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 영국군 화포의 사거리와 화력 집중 지점에 대해 경고한 덕분에 장수들이 목숨을 건진 일까지 있었다. * [[제임스 2세(스코틀랜드)]] - 대륙에서 들여온 대포에 관심이 많았고, 포병을 육성하고 본인도 대포에 집착스러운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가 록스버러 공성전 중에 대포 근처에 있다가 대포가 폭발하면서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