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활자 (문단 편집) === [[금속활자]] === 목제 활자 역시 쓰다 보면 갈라져 버리는 등 지속적인 인쇄에 쓰기에는 강도에 문제가 있었고,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금속 활자가 쓰이게 된다. 한국 쪽은 금속활자의 시용 면에선 최초 자리에 있다. 기록으로 남아있기로는 금속활자로 고금상정예문을 찍었다는 기록이 금속활자에 대한 기록으로는 가장 최초이나 상정고금예문 자체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그 외에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가 고려시대에 금속활자로 찍은 책을 조선시대에 복각한 판본으로서 고려시대의 금속활자 사용에 대한 단초를 남기고 있다. 하지만 고려 시대에 금속활자로 찍어낸 책이 몇 가지 남아 있으며, 그 중 [[직지심체요절]]은 현재 전하는 금속활자로 된 인쇄물 중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 그간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 연구에 의하면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한 판본이 '''직지심체요절보다 139년이나 앞선 금속활자 인쇄물'''임이 밝혀졌다. 그간 목판본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90년 동안이나(...) 자세한 전말은 [[금속활자]] 항목에 서술된 내용을 참고. 이 남명증도가 판본은 목판본으로서도 이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조선은 고려 때보다 금속 활자 면에서 발달한 면을 보여준다. 조선 정부가 처음으로 만든 금속 활자였던 계미자는 [[밀랍]]을 깔고 그 위에 활자를 놓아 고정한 후 인쇄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는데, 이런 방법으로는 밀랍을 사용하면서 추가비용도 들고 인쇄하는 데 시간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 [[세종대왕|세종]] 때 새로운 금속 활자인 경자자와 갑인자를 제작, 활자를 반듯한 입방체 형태로 제작하여 글자간의 빈틈을 없애고, 인쇄를 위해 글자를 고정할 때도 대나무로 글자들을 조이고 고정하는 방식을 사용하면서 밀랍을 사용하지 않고 인쇄 속도도 향상되는 성과를 얻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