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효혜공주 (문단 편집) === 사후 === 효혜공주는 슬하에 김선옥(善玉)이라는 딸 하나만 두었다. 이 딸은 [[문정왕후]]의 남동생 [[윤원로]]의 아들 윤백원과 혼인했다. 그런데 윤백원은 [[명종(조선)|명종]]대에 [[이량]] 일파에 가담하여 사림을 제거하려다가 유배되는 사람이다. 그 이유가 아버지 윤원로를 죽게 만든 [[윤원형]]에게 복수하고자 권신이자 외척인 [[이량]]의 말 잘 듣는 장기말이 되었던 것. 이때 효혜공주의 하나밖에 없는 사위라고 문정왕후가 언서를 내려 가까운 곳으로 유배지를 옮겨주었다.[* 선옥은 태어나자마자 효혜공주가 죽어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문정왕후도 남동생 윤원로를 정계에서 축출하는 데 동의했을 테니, 그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이기도 한 윤백원과 자신의 의붓손녀인 선옥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 사실 문정왕후는 세간의 이미지와 달리 중종의 후궁들이나 자식들에게 야박하게 군 적은 없다.[* 중종의 후궁 [[희빈 홍씨]], [[창빈 안씨]] 등은 명종 대까지 궁중에서 살았고, 문정왕후의 행장에도 평상시에 왕자와 왕손들에게 두루 은전을 베풀었다고 쓰였다. ] 훗날인 1589년 효혜공주의 사위 윤백원이 [[의문사]]한다. 그의 첩 복이와 딸 윤개미치가 아버지/남편을 독살했다는 죄목으로 장을 맞다가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13년 후인 1602년, 윤개미치의 아들 이순이 [[상언]]하여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알고보니 진범은 윤백원의 아버지의 서자들(즉 윤백원의 이복동생들)이었고, 이들이 무고한 사람들에게 죄를 전가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진실이 밝혀진 뒤 복이와 윤개미치는 뒤늦게 신원(伸冤) 및 복권되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비극. 그나마 진범들은 자신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당한 것과 완전히 똑같은 꼴을 그대로 되돌려받게 되었다.(출처: <조선의 명탐정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