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미히토 (문단 편집) == 개요 == || [[파일:아키시노노미야 문장.svg|width=200]] || ||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의 문장 || [[일본]]의 [[황태자|황사]]. [[일본]]의 125대 [[천황]] [[아키히토]] 상황과 [[미치코 상황후]]의 2남 1녀 중 [[차남]]이며, 126대 [[천황]] [[나루히토]]의 친동생이다. 형 나루히토가 천황으로 즉위한 [[2019년]] [[5월 1일]] 부로 [[일본]] 황위 계승 서열 1위로 [[미야고]](궁호)는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이다. [[어칭호]](御稱号)는 아야노미야(礼宮). 미야고는 황실의 옛 땅인 야마토 북서부의 아키시노(秋篠)에서 유래했다. [[일본 황실]]로부터 받은 오시루시(お印)[* [[일본]] 황족에게 주어지는 개인 표식. 주로 식물이며, 사용하는 물건 등에 붙는다.]는 [[솔송나무]]. 아내 [[키코 비]]와의 사이에 [[코무로 마코]], [[카코 공주]], [[히사히토]] 친왕을 두고 있다. 후미히토에게는 유일한 아들, 아키히토 상황에게 있어 유일한 손자이자 다음 황위를 계승하여야 할 남자 황족인 히사히토 친왕은 [[일본 황실]]에 40여 년 만에 태어난 황위 계승자로 주목을 받으면서 태어날 때부터 황태손(皇太孫)과 다름없는 취급을 해주었다. 뉴스 등의 언론 보도에서는 '후미히토'라고 불리는 일은 거의 없고 보통 아키시노노미야사마(秋篠宮さま)로 불린다.[* [[키코 비]], [[마코 공주]], [[카코 공주]]나 히사히토처럼 휘를 부르지 않고 '아키시노노미야'라고만 부른다면 후미히토를 부르는 것이다.] 2017년 6월 9일 [[아키히토]] [[천황]]의 '천황의 퇴위 등에 관한 황실전범 특례법'(天皇の退位等に関する皇室典範特例法)이 국회의 입법절차를 모두 거쳐 법률로서 성립되었고, 부칙을 비롯한 부속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동년 6월 13일부터 시행되었다. 후미히토 친왕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면, 황태자 [[나루히토]] 친왕의 천황 즉위 이후 후미히토 친왕에게 '황사(皇嗣)'라는 호칭이 새로이 부여되며, 존칭은 전하가 된다.[* 일본어 발음기호로는 ''Kōshi Denka'', 영어 번역은 ‘His Imperial Highness the Crown Prince.][* 현행 [[황실전범]] 8조는 "황사(皇嗣)인 황자(皇子)를 [[황태자]](皇太子)라 한다. 황태자가 없을 때는 황사인 황손을 황태손(皇太孫)이라 한다."라고 규정했다. 후미히토를 [[황태제]](皇太弟)라고 호칭해야 옳겠지만, 황실의 가법인 황실전범에 규정된 호칭이 아니라서 쓸 수 없다. 그리하여 전문가회의에서는 조문에 있는 '황사(皇嗣)'라는 단어를 호칭으로 끌어 쓰기로 했다. 이러한 이유로 후미히토는 황태자에 준하는 인물이지만 또 황태자가 아니라는 애매한 위치에 있다. 추정 상속인으로서 나루히토에게 아들이 생기면 상속인 지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황태제는 그런 의미에서 나루히토에게 아들이 있어도 동생이 계승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쓸 수가 없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 일본에는 황태자가 없고, 후미히토가 황태자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황사(皇嗣)'란 단어에서 사(嗣)는 '차기 임금의 자리를 계승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황사'라는 말은 단순히 '황위를 잇는 자'라는 말이고 고유명사는 아닌데, 이 '황사'를 황태자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은 690년 [[측천무후]]가 황제로 즉위하고 주(周)를 선포한 뒤에 [[당 예종|전임 황제였던 자신의 아들 이단]]에게 무씨 성을 주고 '황사(皇嗣)'로 임명하면서 나온 것을 제외하고는 정식 용어로 쓰인 사례를 찾기 어렵다. 현재 [[대한제국]] 황실 수장을 맡고 있는 [[이원(1962)|이원]]의 칭호 역시 '''황사손(皇嗣孫)'''인데, 그 의미는 '''황제(황실)의 대를 잇는 후손'''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미히토가 '황사' 칭호를 받음은 실질적으로 [[황태제]]가 되는 셈.[* 덤으로 [[나루히토]] 천황 이후 즉위한다면, 역대 최고령 [[천황]]이 될 가능성이 있다.] 2020년 11월 8일에 정식으로 황사에 책봉함을 알리는 릿코시 선포식(立皇嗣宣明の儀)을 치뤘다. [[https://www3.nhk.or.jp/news/html/20201108/k10012700871000.html|#1]] [[https://www3.nhk.or.jp/news/html/20201108/k10012701031000.html|#2]] [[https://www.yna.co.kr/view/AKR20201108035100073?input=1179m|#3]] 한국 언론에서는 '황사'라는 호칭을 번역하기 애매했는지 그냥 심플하게 '''왕세제(王世弟)'''라고 부른다. 새 천황 즉위 이후 거처는 원칙대로라면, 후미히토 일가는 그동안 형인 나루히토 일가가 지내던 [[아카사카 어소]]에 지내야 한다. 하지만 이곳은 상황/상황후가 되는 아키히토 내외의 거처로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후미히토 일가는 현 저택을 개보수해서 그곳에서 계속 지낼 예정이며[* 후미히토와 그의 처자식에 대해 워낙 논란이 많다 보니, 저택 개보수 비용 및 임시거처 건축 비용을 두고 일본 국민들이 '세금 낭비'라고 투덜거린다. 사실 황거 개보수 비용이나, [[아키히토]] 내외가 퇴위 후 임시 거처로 사용할 구 [[노부히토|다카마츠노미야 노부히토]] 저택에 대한 개보수 비용, 그리고 아카사카 어소 개보수 비용도 제법 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별 다른 말이 없다. 후미히토 일가가 지금 일본 국민들에게 얼마나 미운 털이 박혔는지 짐작 가능한 부분.] 아카사카 어소에 지내는 아버지 아키히토 상황과 어머니 미치코 상황후가 사망한 다음에서야 후미히토 가족은 비로소 아카사카 어소로 들어갈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