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미히토 (문단 편집) === [[일본 황실]] === [[일본]] 사회 내부뿐만 아니라 과거 일제의 피해국이었던 [[한국]]과 [[중국]]에서도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애처가 형 나루히토 천황[* 2015년 2월 23일, 55세 생일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쟁의 참상을 겪은 세대가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역사를 잘 전달하여야 한다.'는 요지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평소에도 평화주의자 아버지 아키히토의 노선을 그대로 이어받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때문에 한국과 중국 등 일제의 피해국가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편. 또한 마사코 황태자비가 공무에 나오지 못하는 상황과, 아이코 공주가 이지메와 같은 문제로 비난여론이 빗발치자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등, 애처가이자 가정적인 남자의 모습까지 보여주는 모습 등 여러모로 후미히토와 대비된다.]과 달리, 후미히토는 평이 많이 안좋은 편이다. 우선, '''[[일본]]의 [[극우]]주의자 및 국수주의자와 가깝게 지내면서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인물로 상당기간 알려졌다. 게다가 늦둥이 아들 히사히토 친왕이 태어났기 때문에 황태자 부부의 무남독녀 아이코 공주의 [[여왕|여성 천황]] 즉위가 사실상 물건너가면서, 더더욱 평이 나빠졌다. 게다가 마사코 황태자비의 안타까운 삶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아이코 공주는 황태자 부부가 천신만고 끝에 낳은 친딸이라는 점이 더욱 부각되기 때문에, 당연히 히사히토 친왕의 탄생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그런 이유로도 자연스럽게 그의 아버지인 후미히토 친왕을 나쁘게 생각한다. 공식적으로는 가쿠슈인 대학에서 키코 비를 만나 교제하다가 결혼한 과정이 아름답게 선전되어 왔지만, 사실 키코 비와 함께 활동했다는 [[동아리]]는 후미히토 친왕의 '''[[하렘]]'''이었다는(…) 루머까지 떠돌 정도. 후미히토 친왕은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보면 친구 등 주변인을 시켜 그 여학생을 동아리에 가입하게 했는데, 그런 데리고 놀던 여러 여학생들 중 끝까지 후미히토 친왕의 곁에 남은 사람이 가와시마 키코였다는 것이다.[* 가와시마 키코는 후미히토 친왕을 만나 그가 황자임을 안 후, 이전까지 쓰던 보통 말씨를 [[일본 황실]] 특유의 말씨로 싹 바꾸었다고 한다. 이 말이 맞다면, 그때부터 황실에 시집 가겠다고 단단히 마음 먹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황실에 시집 가기를 스스로 자처했다는 점에서는, [[영국]]의 왕세자비 [[캐서린 미들턴]]과 닮았다고도 할 수 있다. 시기상으로 보면 엄연히 캐서린 미들턴이 키코 비의 후배(?).]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serdisk.webry.biglobe.ne.jp/143539993497078422179.jpg|width=100%]]}}} || 후미히토 친왕의 [[장인어른]]인 가와시마 타츠히코 교수. 시집가기 전의 딸 가와시마 키코와 함께. 타츠히코 교수는 [[미국]]과 [[유럽]]에서 오랜 기간 [[유학]]을 해서인지 성격이 매우 괄괄하고 꼿꼿하다고. 1996년 무렵 사위 후미히토 친왕이 어느 [[태국인]] 여성과 스캔들이 터졌을 때, 황거로 찾아가서 사돈 아키히토 덴노와 협상 담판을 지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아들 하나 잘못 키운 죄로 사돈 앞에서 여러 번 면목이 없어진다.~~ 심지어 이미 고등학생 시절에 키코를 알았다는 말도 있다. 가쿠슈인 고등과 시절 [[사진]]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후미히토 친왕은 인근 명문 [[여고]] 몇 군데에 "예쁜 여학생들의 사진을 달라"고 요구했고, 다른 학교들은 모두 거절했으나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만은 그 요구에 응하여 몇몇 여학생들의 사진을 제출했는데, 그 중에 가와시마 키코의 사진도 있었다는 것. 2003년 키코 비, 마코 공주, 카코 공주와 함께 간 [[태국]] 순방[* 당시 마코 공주는 가쿠슈인 초등과 6학년, 카코 공주는 3학년이었다. 어린 두 공주에게는 첫 해외순방이었다.]에서까지 그 [[태국인]] 여성을 만났다고도 한다. 키코 비는 그것을 알면서도, 순방 내내 참으며 공식 석상에서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야 했다고. [[언론통제|일본에서는 부정적인 황실 관련 보도를 금기시하여]] 화제가 잘 되지 않지만,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심심치 않게 얘기가 돈다. 그래서 [[우익]] 세력 말고는 엄청나게 씹어대는 인물이었다.[* 히사히토 탄생과 형수 마사코 황태자비의 요양으로 상대적 이미지가 엄청 좋아졌다.] 그리고 젊은 시절(1990년대 초), 황실 가족 모임에서 술에 취해 [[시녀]]를 희롱하다가 형 나루히토 황태자로부터 질책을 듣자, 지가 잘났다며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다. 그때 새댁에 아기(마코 공주) 엄마였던 키코 비는 남편의 포악한 행동을 보고만 있었으며, 결국 여동생 사야코 공주가 달려와 중재하면서 두 오빠의 격한 다툼을 말렸다고 한다. 딸들과는 사이가 좋은 듯도 하지만, '''두 딸 모두 만 20세 생일의 성년 기자회견에서 아버지의 성격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큰딸 마코 공주는 '아버지께서 예전에는 화를 잘 내셨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사실 2006년 9월에 [[고명아들]] 히사히토가 태어나면서 후미히토의 난폭한 성정이 좀 누그러졌다는 설이 있었는데, 마코 공주가 확인시켜 준 셈. 작은딸 카코 공주도 자신의 단점에 대해 말할 때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도화선이 짧은 면이 있어서,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제는 하다하다 2016년 [[일본]] 내에서 키코 비를 폭행한다는 소문과 쇼윈도 [[부부]]라는 소문이 돌다. 다만 소문들이 진짜라기보다는, 후미히토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 또는 이미지라고 보는 게 맞는 듯하다. 후미히토가 정말 키코 비를 사랑해서 결혼했을까? 후미히토는 여자들을 막 대할 것 같다! 하는 식으로. [[2016년]] 들어서는, [[알코올 중독]]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사실 일본 남성 황족들은 유전적으로 술을 잘 먹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이라는 소문을 받은 건 극히 일부인데, 이상하게도 이런 소문을 듣는 황족들은 [[토모히토]] 친왕이나 후미히토처럼 다소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라는 게 특징.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딸들에 비해 아들 히사히토를 굉장히 [[기를 죽이고 그래요|오냐오냐 떠받들고 있다]]고 한다. 같은 잘못을 하더라도 딸들이 했을 때는 꾸짖었던 행동을, 히사히토가 했을 때는 그냥 넘어간다고. 그러다 보니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는 아버지에게 히사히토를 더 야단치라고 눈치를 주며 아버지처럼 눈치없이 자기 할 말을 하는 카코 공주는 대놓고 그거에 대해서 항의하기도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3남매의 입학식과 졸업식만 봐도, 후미히토 친왕은 2004년 3월 마코 공주의 가쿠슈인 초등과 졸업식 이후로 딸들의 입학식과 졸업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있다. 키코 비 혼자서 두 딸의 입학식과 졸업식에 참석했다. 반면 아들 히사히토 친왕의 유치원 및 초등학교 입학식과 졸업식, 중학교 입학식에는 꼬박꼬박 참석했다. 두 공주 모두 불만이 많지만, 특히 작은딸 카코 공주의 불만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아무리 10살 넘게 차이나는 늦둥이 동생이라 해도, 상황이 이렇다보니 [[누나]]들과 [[남동생]]의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놓고 편애하는 거 보면, 후미히토에게는 제대로 된 양육관 자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실제로 2019년 6월 이후에 이러한 교육을 받고 자란 히사히토의 인성 자체의 문제가 발각되어버렸다. 과거 작은딸 카코 공주가 성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한테 맞은 적이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고, 주기적으로 손버릇이 안 좋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었다. 2019년 10월, 친형 나루히토 덴노의 덴노 즉위식 의식 중 하나를 치르기 위하여 빗속에 황궁 내 제사 공간에 도착했을 때, 후미히토는 쓰고 있던 우산을 접어 바로 옆에 있던 경찰청에서 파견된 남성 궁무관[*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배속 시종/시녀를 통합해서 부르는 명칭] B에게 [[노룩패스|우산을 무심하게 던지는 장면]]이 당시 해당 공간에 있던 언론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이를 감안할 때 후미히토 일가에 배치되는 시종들이 모조리 도망치는 것에 대해서 그동안 '키코 비의 신경질적인 태도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으나, 사건 이후 일본에서는 이러한 것에 키코 비뿐만 아니라 후미히토도 어느 정도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로 B는 2020년 1월경에 8개월 간의 파견근무를 끝내고 경찰청에 돌아왔고, 경찰청은 B(캐리어 경관)의 후임으로 준캐리어 경관을 보내는 동시에 궁내청에 항의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이는 일본 특유의 고도로 경직된 관료사회 특성상 매우 이례적인 점이다. 사실 지금 아키시노노미야에 대한 문제들의 대부분이 후미히토의 망나니 기질에서 출발하는 것을 보면, 어찌 보면 지금 후미히토는 그동안의 업보를 제대로 치루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