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팔굉일우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고사성어]][[분류:일본의 타워]][[분류:1940년 건설]][[분류:일본 제국]][[분류:천황제 파시즘]] [include(틀:일본군의 전쟁범죄)] [목차] == 개요 == '''팔굉일우'''([ruby(八紘一宇, ruby=はっこういちう)])는 '온 천하가 한 집안'이라는 뜻의 [[사자성어]]로, [[일본 제국]]이 [[태평양 전쟁]] 당시 이를 변형하여 국시로 사용하였다. [[내선일체]](황민화 교육), [[대동아공영권]]과 함께 당시 일본의 제국주의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 역사 == 팔굉(八紘)이란 천지를 연결하는 여덟 바로 온 누리의 대유고, 일우(一宇)는 한 지붕이라 하여 한 집을 뜻한다. 팔굉은 기원전 1세기에 기록된 중국의 고서 《[[회남자]]》에 등장한다. >九州之大 純方千里 九州之外 乃有八殥 亦方千里 (…) 八殥之外 而有八紘 亦方千里 >[[구주#s-2|구주]]의 크기는 즈믄[* 천(千)의 옛말.] [[제곱]][[리(단위)|리]]고 구주의 밖은 이에 팔인(八殥)이 있는데 또한 즈믄 제곱리고 (중략) 팔인의 밖에는 팔굉이 있는데 또한 즈믄 제곱리다. >---- >『[[회남자]]』, 「추형훈墜形訓」 회남자에서는 구주의 밖을 팔인이라 하고 또 팔인의 밖을 팔굉이라 하였다. 그러나 팔굉은 전거가 오래되었어도 팔굉일우의 역사는 그보다 짧다. 먼저 팔굉일우의 유래가 된 전거는 [[일본서기]]에 있다. 여기서 [[진무 천황]]이 즉위하기 2년 전이라는 기원전 662년에 내린 [[칙령]]이 있는데 여기서 팔굉일우의 모티브가 나온다. >兼六合以開都 掩八紘而爲宇不亦可乎 > >[ruby(六合,ruby=くにノうち)]を [ruby(兼,ruby=か)]ねて [ruby(以,ruby=も)]て [ruby(都,ruby=みやこ)]を [ruby(開,ruby=ひら)]き [ruby(八紘,ruby=あめノした)]を [ruby(掩,ruby=おほ)]ひ[ruby(而,ruby=て)] [ruby(宇,ruby=いへ)]と [ruby(爲,ruby=せ)]む こと [ruby(亦,ruby=また)] [ruby(可,ruby=よ)]から[ruby(不,ruby=ず)][ruby(乎,ruby=や)] > >[ruby(육합,ruby=나라 안)][* 천지사방]을 아울러 서울을 열고 [ruby(팔굉,ruby=하늘 아래)]을 덮어서 집으로 삼는 일은 또한 좋지 아니한가 >---- >『[[일본서기]]』 권3「[[신무천황|신무]]기」, 기미년(己未年) 3월[* 당연하지만 [[그레고리력]]이 아니고 늦봄이다.] 신유삭(辛酉朔)[* 1일이 신유일이란 뜻] 정묘(丁卯)[* 7일] [[훈독]] 때문에 [[A라고 쓰고 B라고 읽는다]]로 읽어야 할 곳이 보인다. 특히 일본 고대 문헌은 격식있는 한자어를 일본어로 새겨 읽으므로 이런 현상이 많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본신화]]의 건국표어지만 여기서도 일우(一宇)라는 글은 없다. 그러나 니치렌주의자인 불교 학자 다나카 지가쿠(田中智學)가 1903년 이 글귀를 따와 고쳐서 팔굉일우라는 조어를 만들었다. 이 당시에도 [[홍익인간]]과 같이 신화적 표어일 뿐이었으나, 이후 1930년대의 대공황에서 일본 제국이 완전히 [[군국주의]]의 길에 접어들면서 의미가 변질되었다. 팔굉일우는 [[1940년]] [[고노에 후미마로|제2차 고노에 내각]]에서 인용되며 일본 제국의 국시가 되었다. '온 세계가 하나의 지붕'이라는 뜻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세계만방이 모두 천황의 지배 하에 있다'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 팔굉일우탑 == ||<-2> {{{+1 {{{#FFF '''[ruby(八紘一宇の塔(平和の塔), ruby=はっこういちうのとう(へいわのとう), color=#FFF)]'''}}}}}}[br]{{{#FFF '''팔굉일우탑(평화의 탑)'''}}}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http://www.miyazaki-city.tourism.or.jp/images/spot/sp28/main.jpg|width=100%]]}}}|| ||<-2> [[http://www.miyazaki-city.tourism.or.jp/kr/sightseeing/spcat05/spot28.html|{{{#fff 팔굉일우 탑 소개홈페이지(한국어, 일본어, 영어)}}}]] || ||<-2><#000> '''{{{#fff 명칭}}}''' || || '''한국어''' || 팔굉일우탑 / 평화의 탑 || || '''일본어''' || 八紘一宇の塔[* 팔굉지기주(八紘之基柱), 일본어로는 아메츠치노모토하시라(あめつちのもとはしら)라고도 부르는데 '팔굉의 기초가 되는 기둥'이란 뜻이다.] / 平和の塔 || || '''영어''' || "''Hakkō ichiu''" Tower(monument)[* "''Hakkō''" Pillar.] / Tower of Peace || ||[include(틀:지도,장소=宮崎県立平和台公園,너비=100%,높이=300px)]|| [[파일:Founding_Ceremony_of_the_Hakko-Ichiu_Monument.jpg]] ▲ [[황기]] 2600년(1940년)을 맞아 [[미야자키시]]에 건립된 팔굉일우 기념탑. [[한국]]과 [[중국]] 등 점령지에서 가져온 돌로 세워졌다. 패전 후 철거당할 뻔하였으나 '평화의 탑(平和の塔)으로 개명 후 어찌어찌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름만 '평화의 탑'이지 주변 사람들은 과거처럼 '팔굉일우의 탑'이라고 부르는데, 탑 중앙에 '팔굉일우'라고 새긴 글자는 전혀 안 바꿨기 때문이다. [[파일:800px-HakkoIchiu10sen.jpg]] ▲ 팔굉일우 탑이 그려진 10전짜리 지폐. == 기타 == [[파일:800px-Flag_of_Hakkoichiu.jpg|width=40%]] ▲ 팔굉일우기(旗) 아래 모인 [[일본군]] 조종사들. [[태평양 전쟁]] 당시의 사진이다. 당시 일본군에는 공군이라는 독립된 군종이 없었으므로, 해군 항공대나 육군 항공대 조종사들이다. [[파일:Celebrating_Gagaku_Music_in_Imperial_2600.jpg]] ▲ 1940년 11월, [[황기]] 2600년 기념 행사에 참석한 [[쇼와 덴노]]와 [[고준 황후]]. 1940년[* 일본 제국의 전성기이자 [[황기]] 2600년이라는 딱 떨어지는 숫자 때문에 여러모로 중요한 해이다. [[천황]]의 우상화가 극에 달한 시기이기도 하다.] 일본 제국의 총리 [[고노에 후미마로]]는 시정 방침 연설에서 "황국(일본 제국)의 국시는 팔굉을 일우하는 국가의 정신에 근거한다."라고 말했다.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