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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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만의 배우, 영화 감독. 대만 예술영화의 거장 중 한 명인 차이밍량의 페르소나이다.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제가 영화제작의 의미를 알게 된 건 이 배우 이강생 때문입니다. 저는 이강생을 사로잡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이 얼굴이 없다면, 저는 더 이상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2. 생애[편집]
1968년 10월 20일, 타이베이시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하며,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종종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으며, 때때로 하루에 세 편의 영화를 감상했다. 또한 집 근처에는 인형극과 대만 오페라가 자주 상연되었다고 한다. # 고등학교는 형과 함께 사립 고등학교를 다녔다. #
대학 입시에서 떨어져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보충 수업과 아르바이트[1] 를 병행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다가 1989년, 영화 감독 차이밍량이 오락실에서 아르바이트[2] 를 하고 있는 이강생을 발견해 TV 영화 '해각천애'와 '어린이'에 조연으로 캐스팅했다. 이강생은 2019년 인터뷰에서 "저는 배우가 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재미있는 경험,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절대로 계속할 생각은 없었죠. 차이에게 연기 요청을 받았을 때, 저는 처음에 매우 회의적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이강생이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차이밍량 영화는 1992년작 〈청소년 나타〉이다. 이 작품 이후 차이밍량의 모든 장편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 '차이밍량의 페르소나'가 되었다. 1994년에는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애정만세〉로 금마장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낭트 3대륙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13년에는 〈떠돌이 개〉로 데뷔 이후 최초로 금마장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타이베이 영화제와 아시아-태평양 영화제에서도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른바 스타 배우는 아니지만, 대만 영화사에 손꼽히는 예술영화에 많이 출연했기 때문에 필모그래피가 좋은 배우이기도 하다.이강생을 만난 건 운명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의 얼굴에 담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 영화 제작의 목적입니다. (중략) 이강생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제가 만드는 영화들이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음악과 대화가 많은 평범한 영화들을 훨씬 많이 만들었을 것입니다. 상황은 너무나 달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삶의 방식, 리듬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것은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저를 더욱 진실한 영화들로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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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출연작에서 우울하고 무기력한 하류층의 인물을 자주 연기했다. 또한 이강생의 독특한 연기는 차이밍량 영화의 기본적인 상황과 분위기를 구축했다고 평가받고 있다.[4] Senses of Cinema는 그의 연기에 대해 "도시의 외로움, 장난기 어린 우울증, 성적 소외감을 나타낸다. 상실과 부재가 차이밍량의 세계의 두 가지 주요 주제라면, 이강생은 사라진 모든 것의 증인이자 그리워하고, 아파하고, 지켜보는 사람이다"라고 평했다. UCLA 연구소는 "차이밍량 영화의 얼굴이자 감독의 세계관을 영화적으로 구현한 인물이다. 차이밍량의 작품은 사실 이강생의 신체에 대한 갈망, 연약함, 그리고 힘에 대한 탐구로 해석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영화 감독으로도 종종 활동하고 있다. 2003년 장편 연출 데뷔작 〈불견〉을 공개했으며, 이 작품으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의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수상했다. 4년 뒤에 공개한 두 번째 연출작 〈도와줘, 에로스[5] 〉는 제64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되었다.
3. 필모그래피[편집]
3.1. 영화[편집]
3.1.1. 출연작[편집]
3.1.2. 연출작[편집]
3.2. TV[편집]
4. 수상[편집]
5. 여담[편집]
- 실제 성격은 굉장히 조용하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그렇게 많이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고립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종종 저에게 외롭지 않냐고 묻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어울리고 시끄러운 장소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차이밍량도 마찬가지이고, 그 또한 고립을 좋아하며, 우리는 둘 다 이러한 조용한 장소와 영화를 선호합니다"라고 말했다.
이강생: "제 연기 리듬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느립니다. 차이밍량 감독님과 함께 첫 TV 드라마를 만들었을 때, 제가 고개를 돌릴 때도, 다른 사람들보다 반 박자가 느렸기 때문에, 감독님은 3일 후에 저를 캐스팅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래서 감독님은 제게 고개를 돌리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저에게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반 박자가 느렸습니다. 나중에 그는 화가 나서,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매우 불안해졌습니다. 제가 고개를 돌릴수록, 더 부자연스러웠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에게, '저는 단지 느립니다. 느리다는 것은 저에게 자연스러운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 인터뷰에서 차이밍량에 대해 "제 인생에서 여러 역할을 합니다. 그는 저의 멘토이자, 감독이고, 친구이고, 때로는 엄마이고, 담배를 피우거나 살이 너무 찌는 것에 대해 잔소리를 할 수 있습니다(웃음). 저는 차이에게 가족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말레이시아에서 공부하러 온 그는 대만에 혼자 있었고 친구도 많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는 그의 영화에서 외롭고 내성적인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 차이밍량은 인터뷰에서 이강생에 대해 "이강생은 정말 재능이 있는 배우인데 너무 진지하고 말도 안 되는 우울함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는 매우 재미있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쿨한 사람인데, 내가 보기엔 아주 웃긴 게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다들 내 영화를 느리다고 말한다. 이강생은 다른 어떤 배우보다 느리다. 고등학생 때 그를 길거리 캐스팅했는데 처음엔 나도 이 느림이 익숙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그를 따라 내 영화도 느려졌고 나도 그 속도가 점점 좋아졌다. 이번 공연에서 불과 5m 남짓을 걸어가는 데 20분 가까이 걸리기도 한다. 그 걸음걸이는 무언가를 표현한 것이 아니지만 모든 것을 보여준다. 만약 그가 연기를 그만두면 나의 창작도 끝날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공무원이나 방송계에서 일을 했을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 2005년 인터뷰에서 자신이 출연한 차이밍량의 영화중에서 가장 공감하는, 혹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은 〈흔들리는 구름〉과 〈거기 지금 몇시인가요?〉를 꼽았다.
- 2023년 10월 20일, 미국 뉴욕에서 촬영을 마치고 숙소인 호텔에서 생일을 맞았는데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어 왼쪽 팔 전체에 물집이 생겨 2도 화상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도 무사히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 어린 시절에는 곱상한 외모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상당히 후덕해졌다.
- 젖꼭지가 세 개이다. # 데뷔작 〈청소년 나타〉 부터 2020년작 〈데이즈〉까지 변함이 없다.
6.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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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웨이터, 보험 판매원, 불법 도박장 앞에서 경비원 등의 잡일을 했다고 한다.[2] 차이밍량이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를 본 후 영화관에서 나왔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아주 조용히 앉아 오락실 옆에서 경찰이 오는지 아닌지를 살피며 망을 보고 있는 이강생을 발견했다고 한다. #[3] 차이밍량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모든 영화가 "이강생을 바라보는 방식의 발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이강생을 자신의 영화에 등장시키는 것을 하나의 건축 과정, 즉 그를 주요 요소로 하는 건축적 구성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4] 출처[5] 차이밍량이 제작자로 참여했다.[6] 차이밍량과 두 시간동안 대화를 나누는 다큐멘터리이다.[7] 동명의 단편 영화를 다시 장편 영화로 기획한 작품이다.[8] 차이밍량이 조연으로 출연했다.